시조 채선무는 고려 중기에 동지사를 지내고
동지추밀원사에 추증되었다 .
그는 인천에서 살았으며, 후손으로 고려말에 호조전서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하자 절개를 지켜 두문동으로 들어가 숨어지내던 채귀하를 중시조로
하고 본관을 인천으로 하였다.
《인천채씨세보(仁川蔡氏世譜)》에 의하면 고려 현종 때 채충순(蔡忠順)이 제양(인천의 옛이름) 개국자에 봉해져서 인천채씨의 계보가 시작되었다고
전하나 그 후의 세계가 확실하지 않아 채선무를 시조로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조의 선계 (先系)는 문헌이 없어 상고(詳考)할
수 없으며 그는 고려(高麗) 때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使)에 추증되고 인천(仁川)에
세거(世居)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인천(仁川)을 관향(貫鄕)으로 하게 되었다.
인천 (仁川)은 경기도 중서부, 경기만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매소홀현이라 칭하였다.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러 경덕왕 때 소성으로 개칭, 율진군(지금의 시흥군)의 영현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392년 인주로 환원, 1413년에 인천군이 되었으며, 1949년 인천시로 개칭되었다
신징 (愼徵)이 나라에 공을세워 대장군을
거쳐 은청광록대부에 올랐고, 손자 보문(寶文)은 고려 의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상서 등을 지냈으며 학문이 뛰어나 문명을 날렸고, 뒤에 추밀원사, 태자빈객,
지제고를 거쳐 보문각 대제학을 역임하였고 금성백에 봉해졌다.
한편 시조 선무(先茂)의 10세손 귀하(貴河)는 고려 말에 정몽주 등과 교류하며 공양왕때 호조전서를 지냈으나,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의 충절로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조선조에서 가문을 빛낸 인물은 부사 신보(申保)의 아들 수(壽)가 부수찬으로 춘추관의 기사관이 되어 [세조실록(世祖實錄)]과 [예종실록(睿宗實錄)]편찬에
참여했다.
후에 대사성, 호조 참판 등을 역임하고 중종반정이 일어나서 정국사등공신으로 인천군에 봉해졌으나 이미 옛 친구들은 거의 죽고 없어졌을뿐더러
조정의 삼상육경(三相六卿 : 삼정승과 육조 판서)이 모두 후배들인지라,"일찌기 임금이 알아 주셔서 녹을 먹은 지 40여 년이 되어
영화를 누림도 이미 극에 달했으니아무런 아쉬움이 없다."하면서 벼슬을 버리고 함창에 은거하여 시문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의 손자 무일(無逸)은 예조정랑, 헌납을 거쳐 한성부 서윤에 이르렀으며, 음률(音律), 의학(醫學), 복서(卜筮) 등에도 정통했다.
그외 인물로는 부제학을 지낸 무택(無擇)과 학자로 유명한 응린(應麟),선견(先見), 이항(以恒), 몽연(夢硯) 등이 뛰어났다.
한말에 와서는 기중(基中)이 광복단을 조직하여 군자금 모집과 독립운동에 몸 바쳤고, 상덕(相悳)은 1925년 3월 육군주만참의부가 일본군에게
참패하자 자결하여, 항일 투쟁에 목숨을 바친 응언(應彦)과 함께 가문을 영광되게 하였다
채수(蔡壽)
채지홍(蔡之洪)
채득기(蔡得沂) : 학자로 역학 천문에 밝았다.
채이항(蔡以恒) : 병자호란의 척화신으로 심양에 잡혀갔다가 돌아왔다.
채지면(蔡之沔) : 성리학자
채기중(蔡基中) : 독립운동가
채상덕(蔡相悳) : 독립운동가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인천채씨(仁川蔡氏)는 남한에 총 8,510가구, 34,82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남 용강군 , 중화군 일원
경남 고성군 일원
경북 달성군, 영천군 일원
경남 거창군 일원
경북 경산군, 문경군 일원
경기도 일원
경북 상주군 일원
인천 인천채씨
대종회 (02)712-1674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46-20 명지빌딩2층
인천 인천채씨대종회 (02)712-1674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가
46-20 명지빌딩2층
평강 평강채씨서강공파종중 031-876-4725 경기 -의정부-의정부2-484
평강 평강채씨신제공파종중 063-583-7240 전북 -부안-주산-소산-240
탐진 탐진채씨부호군파종회 031-206-3775 경기 -수원-팔달-영통-1022-3(5층)
인천 인천채씨대종회 02-712-2701 용산 -원효로1-46
평강(蔡)s 평강채씨 향림종회 063-446-8235 전북 군산 삼학동
313-26 chaee21@hanmail.net
본관은 평강 (平康) · 인천 (仁川)
· 음성 (陰城) · 광주 (光州)의 4본으로 전해지나 동원분파(同源分派)로
알려졌으며, 그 중 평강과 인천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전해지는 바로는 채씨의 선대는 고대 중국 고신(高辛)의 아들인 사도(司徒) 계(契)의 후손으로, 은(殷)나라가 멸망하자 기자(箕子)를 따라
한국에 왔다고도 하며, 일설에는 평강채씨의 시조 채원광(蔡元光)은 신라 제17대 내물왕의 사위 채보한(蔡輔漢)의 후손이라고도 하나, 그 고증은
어렵다.
또 민간전설에 “ 오색이 영롱한 영귀 (靈龜:거북)가 평강(平江)에서 나와 사람으로 변하니 왕이 이를 듣고 채성(蔡姓)을 하사하고 평강백(平康伯)에
봉하였다 ” 고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