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최씨 (江陵崔氏)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도 상계(上系)를 달리 하는 다음 3계통(系統)이 있다.
최필달)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삼한벽상 개국찬화공신(三韓壁上開國贊化功臣)에 책록되어 영첨의좌정승(領僉議左政丞)을 역임한 후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에
봉해졌다.
최흔봉) 고려 태조(太祖)의 부마(駙馬)로 대경(大卿)에 올랐다.
최문한) 고려 충숙왕(忠肅王)의 부마(駙馬)로 삼중대광(三重大匡) 판군기시사(判軍器寺事)에 올랐다.
강릉최씨 (江陵崔氏)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도
상계(上系)를 달리 하는 다음 3계통이 있다.
첫째는 고려때 삼중대광으로 삼한벽상 개국찬화공신에 책록되어 영첨의좌정승을 역임한 후 경흥부원군에 봉해졌던 충무공 최필달(崔必達)의 계통이고,
둘째는 고려 태조의 부마로 대경(大卿)에 올랐던 최흔봉(崔欣奉)의 계통이며, 셋째는 고려 충숙왕의 부마로 삼중대광 판군기시사에 올랐던 충재
최문한(崔文漢)을 시조로 하는 계통이다.
강릉 (江陵)은 강원도(江原道) 영동(嶺東)지방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예국(濊國: 1세기초에 임둔의 옛 땅에서 자립한
부족국가)의 도성지(都城地)였으며, 상고시대에는 창해(滄海)와 임둔(臨屯)에
속했다가 313년(고구려 미천왕 14)에 개칭하여 하서량(河西良) 또는 하슬라(何瑟羅)라
하였다. 550년(진흥왕 11)에 신라(新羅)의 영토가 되어 선덕여왕(宣德女王)때
소경(小京)으로 삼았다가 태종무열왕조(太宗武烈王朝)에 하서주(河西州)로 개편,
경덕왕(景德王)때는 명주(暝州)로 고쳤고,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동원경(東原京)이라
칭하고 임영관(臨瀛館)을 세웠으며 940년(태조 23)에 다시 명주로 고쳤다.
성종(成宗)때는 처음에 하서부(河西府)로 하다가 986년(성종 5)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로
개칭하고 뒤에 목(牧)으로 하였으며, 995년(성종 14) 지방행정구역을
10도(道)로 나눌 때 삭방도(朔方道)의 중심지가 되어 함경도를 비롯한 영동
일대와 영서(嶺西)의 춘천(春川) 이북 등지를 관할하였다. 1178년(명종
8)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로 개칭하고 원종조(元宗朝)에는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로
승격하였으며, 뒤에 강릉도(江陵道)로, 충렬왕(忠烈王)때 강릉부(江陵府)로,
공민왕(恭愍王)때 강릉삭방도(江陵朔方道)로, 우왕(禑王)때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로
하다가 공양왕(恭讓王)때 대도호부(大道護府)로 승격시키고 별호를 임영(臨瀛)이라
하였다. 조선(朝鮮) 태조조(太祖朝)에 강원도로 개칭되어 세조(世組)때 진(鎭)을
설치하였고, 1667년(현종 7) 원양도(原襄道])로 고쳐 강릉현(江陵縣)으로
강등되었으며, 정조(正組)때 원춘도(原春道)라 하다가 강릉부가 되었다. 1896년(고종
33) 13도제(道制) 실시로 강원도 강릉군(江陵郡)이 되어 21개 면(面)을
관할하다가 1931년 강릉면이 읍(邑)으로 승격되고, 1955년 9월 1일
성덕면(城德面)과 경포면(鏡浦面)을 편입하여 강릉시(江陵市)가 되었다.
각 계통별로 가문의 대표적인 인맥을 살펴보면
충무공 필달의 증손 숭언 (崇彦)이 고려 때 삼중대광으로 명주부원군에 봉해졌으며,
13세손 한주(漢柱)는 고려 충렬왕때 대중대부로 종정경과 정당문학을 지내고
명주군에 봉해졌으므로 필달,숭언,한주는 강릉 최씨가 자랑하는<삼군(三君)>이다.
고려말에 정선군수를 지내고 중정대부로 삼사 좌윤을 역임했던 동강 원량(元亮)의 손자 치운(致雲)은 조선 전기의 명신으로 세종때 훌륭한 치적을
남겼다.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가는 1390년 6월 19일 강릉에서 태어난 조은 치운(致雲)은 세종 원년에 승문원 정자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나가 여러
주요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덕망과 식견을 인정받아 국정을 논할 때마다 왕의 자문에 응했고, 다섯 차례나 명나라를 다녀오면서 외교적인 업적을
남겼다.
치운의 둘째 아들 응현(應賢)은 승문원 부정자에 임명되었으나 고향에 계신 노모의 봉양을 위하여 강릉 훈도에 머무르다가 세조때 강원도 도사직을
억지로 받게 되자 6년의 의무기간 동안 고향 근방의 수령직을 주청(奏請)하여 영월과 고성을 맡아 목민관의 임무를 다했다.
1480년(성종11) 모친상을 당하자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하면서 한번도 집에 내려오지 않았으며 3년상을 마치자 사헌부 집의), 승정원
부승지, 예조참의, 충청도 관찰사, 대사헌, 경주부윤, 한성부 좌윤 등을 역임했다.
한편 응현(應賢)의 셋째 아들 세절(世節)은 당시 폭군의 난정이 극심하였던 시대라 그 해에 등과한 이들의 발표가 보류된 채 중종반정을 맞았다
후에 중종이 즉위한후 성균관 전적을 시작으로 벼슬에 올라 사헌부 지평을 거쳐 호당(湖當)에 뽑혔으며 이조 정랑과 지제교, 좌우부승지, 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후 대사헌, 한성부 우윤, 형,호조의 판서를 지냈다.
한편 사절(四絶)이라 불리웠던 수성(壽 )은 19세 때 이미 문예(文藝)에 일가를 이루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는 기묘사화의 원흉이었던
남곤에게 미움을 사게되었고, 1519년(중종14) 안처겸 일당이 일으킨 신사무옥때 수성은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끝내 극형에 처해졌다. 1521년(중종16)
10월 21일 진시에 처형되니 이때 수성의 나이는 35세였다.
임진왜란 때 28세로 백의창의하여 전공을 세웠던 배천(配天)은 선조로부터 어의(御衣)와 망건(網巾)을 하사받고 회령 교수와 사복시 첨정을
역임했다.
세절의 증손이며 수성의 손자인 기벽은 광해군때 박사로서 태학인 성균관에서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그의 아들 4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강릉최씨를
더욱 빛냈는데, 맏아들 문오(文澳)는 군수를 거쳐 사헌부 장령을 역임했고, 차남 문활(文活)은 군수를 지내고 좌승지에 추증되었으며, 셋째
문발(文潑)은 세속의 명리(名利)를 초탈하고 시주(詩酒)와 더불어 보내며 595수(首)의 주옥 같은 시(詩) 3권 2책에 담은 [취석시집(醉石詩集)]을
남겼다.
막내 문식(文湜)은 지평(持平)을 거쳐 헌종때 장령과 헌납을 지내고 숙종조에 황해도 관찰사, 승지, 대사간, 예조참판, 도승지등을 역임했다.
고려 태조의 부마로 대경(大卿)에 올랐던 최흔봉(崔欣奉)의 후손에서는 그의 12세손 입지(立之)가 고려조에서 문하평리와 상호군을 지내고 평장사에
증직되어 강릉군에 추봉되어 후손들이 강릉으로 시적되었으며, 그의 아들 3형제 중 맏아들 안소(安沼)가 평장사로 강릉군에, 차남 안빈(安瀕)은
이부전서로 예성군에 봉해졌고, 막내 안면(安沔)은 이부전서를 역임하여 가세를 일으켰다.
그외 강릉군에 봉해졌던 유연(有漣)과 병조판서를 지낸 유의형제가 유명했으며, 충숙왕의 딸 선덕공주와 혼인하여 부마(駙馬)가 되었던 문한(文漢)은
기울어져가는 고려의 국운을 일으켜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자기를 태우고 동분서주하던 애마(愛馬)가 강릉 옥천동 용지(龍池)에서 용으로
변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고려의 운명이 다한 것을 깨닫고 그대로 강릉에 정착하여 강릉 최씨의 또다른 계통의 시조가 되었다.
충재공 문한(文漢)의 후손에서는 그의 손자 윤(允)이 사포서 사포(司圃署司圃)를 역임한 후 좌승지에 추증되었고 슬하에 아들 3형제 중 둘째
자호(自湖)는 대사간과 이조 판서를 지냈으며, 막내 자점(自霑)은 홍문관교리를 지내고 평강,고성,금성 등지의 군수를 지내며 선정을베풀었고
훌륭한 치적을 남겨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각 계통별로 가문의 대표적인 인맥을 살펴보면
충무공 필달의 증손 숭언 (崇彦)이 고려 때 삼중대광으로 명주부원군에 봉해졌으며,
13세손 한주(漢柱)는 고려 충렬왕때 대중대부로 종정경과 정당문학을 지내고
명주군에 봉해졌으므로 필달,숭언,한주는 강릉 최씨가 자랑하는<삼군(三君)>이다.
고려말에 정선군수를 지내고 중정대부로 삼사 좌윤을 역임했던 동강 원량(元亮)의 손자 치운(致雲)은 조선 전기의 명신으로 세종때 훌륭한 치적을
남겼다.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가는 1390년 6월 19일 강릉에서 태어난 조은 치운(致雲)은 세종 원년에 승문원 정자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나가 여러
주요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덕망과 식견을 인정받아 국정을 논할 때마다 왕의 자문에 응했고, 다섯 차례나 명나라를 다녀오면서 외교적인 업적을
남겼다.
치운의 둘째 아들 응현(應賢)은 승문원 부정자에 임명되었으나 고향에 계신 노모의 봉양을 위하여 강릉 훈도에 머무르다가 세조때 강원도 도사직을
억지로 받게 되자 6년의 의무기간 동안 고향 근방의 수령직을 주청(奏請)하여 영월과 고성을 맡아 목민관의 임무를 다했다.
1480년(성종11) 모친상을 당하자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하면서 한번도 집에 내려오지 않았으며 3년상을 마치자 사헌부 집의), 승정원
부승지, 예조참의, 충청도 관찰사, 대사헌, 경주부윤, 한성부 좌윤 등을 역임했다.
한편 응현(應賢)의 셋째 아들 세절(世節)은 당시 폭군의 난정이 극심하였던 시대라 그 해에 등과한 이들의 발표가 보류된 채 중종반정을 맞았다
후에 중종이 즉위한후 성균관 전적을 시작으로 벼슬에 올라 사헌부 지평을 거쳐 호당(湖當)에 뽑혔으며 이조 정랑과 지제교, 좌우부승지, 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후 대사헌, 한성부 우윤, 형,호조의 판서를 지냈다.
한편 사절(四絶)이라 불리웠던 수성(壽 )은 19세 때 이미 문예(文藝)에 일가를 이루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는 기묘사화의 원흉이었던
남곤에게 미움을 사게되었고, 1519년(중종14) 안처겸 일당이 일으킨 신사무옥때 수성은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끝내 극형에 처해졌다. 1521년(중종16)
10월 21일 진시에 처형되니 이때 수성의 나이는 35세였다.
임진왜란 때 28세로 백의창의하여 전공을 세웠던 배천(配天)은 선조로부터 어의(御衣)와 망건(網巾)을 하사받고 회령 교수와 사복시 첨정을
역임했다.
세절의 증손이며 수성의 손자인 기벽은 광해군때 박사로서 태학인 성균관에서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그의 아들 4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강릉최씨를
더욱 빛냈는데, 맏아들 문오(文澳)는 군수를 거쳐 사헌부 장령을 역임했고, 차남 문활(文活)은 군수를 지내고 좌승지에 추증되었으며, 셋째
문발(文潑)은 세속의 명리(名利)를 초탈하고 시주(詩酒)와 더불어 보내며 595수(首)의 주옥 같은 시(詩) 3권 2책에 담은 [취석시집(醉石詩集)]을
남겼다.
막내 문식(文湜)은 지평(持平)을 거쳐 헌종때 장령과 헌납을 지내고 숙종조에 황해도 관찰사, 승지, 대사간, 예조참판, 도승지등을 역임했다.
고려 태조의 부마로 대경(大卿)에 올랐던 최흔봉(崔欣奉)의 후손에서는 그의 12세손 입지(立之)가 고려조에서 문하평리와 상호군을 지내고 평장사에
증직되어 강릉군에 추봉되어 후손들이 강릉으로 시적되었으며, 그의 아들 3형제 중 맏아들 안소(安沼)가 평장사로 강릉군에, 차남 안빈(安瀕)은
이부전서로 예성군에 봉해졌고, 막내 안면(安沔)은 이부전서를 역임하여 가세를 일으켰다.
그외 강릉군에 봉해졌던 유연(有漣)과 병조판서를 지낸 유의형제가 유명했으며, 충숙왕의 딸 선덕공주와 혼인하여 부마(駙馬)가 되었던 문한(文漢)은
기울어져가는 고려의 국운을 일으켜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자기를 태우고 동분서주하던 애마(愛馬)가 강릉 옥천동 용지(龍池)에서 용으로
변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고려의 운명이 다한 것을 깨닫고 그대로 강릉에 정착하여 강릉 최씨의 또다른 계통의 시조가 되었다.
충재공 문한(文漢)의 후손에서는 그의 손자 윤(允)이 사포서 사포(司圃署司圃)를 역임한 후 좌승지에 추증되었고 슬하에 아들 3형제 중 둘째
자호(自湖)는 대사간과 이조 판서를 지냈으며, 막내 자점(自霑)은 홍문관교리를 지내고 평강,고성,금성 등지의 군수를 지내며 선정을베풀었고
훌륭한 치적을 남겨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경북 울진군 원남면 매화리
황해도 연백군 해월면 운산리
경북 문경군 산북면 소야리
평북 의주군 옥당면 하경동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함북 명천군 동면 삼호동
충남 보령군 태천면 소횡리
함남 문천군 도초면 주교리
경주 (崔) 경주최씨관과정파종중 02-923-5256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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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청송최씨종친회 02-486-0487 서울 -강동-천호-355(노석빌딩6층)
충주 충주최씨서울사무소 02-706-9954 서울 -마포-마포-350...(강변한신코아빌딩1412호)
해주 해주최씨대종회 02-307-2011 서울 -서대문-북가좌2-300-18
최씨 재부최씨종친회 051-631-5383 부산 -동-범일2-830...(정오빌딩6층601호)
경주 경주최씨광정공파종중 053-981-5232 대구 -동-도-793
경주 경주최씨다천공파종중 053-626-5753 대구 -남-대명10-1637-22
경주 경주최씨백불암파종중 053-983-1380 대구 -동-둔산-386
전주(崔) 전주최씨도사공파 부안현감공지파 019-683-5124 전북전주시
완산구효자 1가 상산타운@109동106호 cmsnada@hanmail.net
전주(崔) 전주최씨도사공파 부안현감공지파 019-683-5124 전북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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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崔) 대전종친회 581-3275 대전시 중구 산성동 한밭가든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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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주 낭주최씨대종회 062-228-3407 광주 -동-금남로5-91...(대성약국402호)
전주 전주최씨전남광주화수정 062-672-1143 광주-남-서-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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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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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 월산리 월산지방산업단지 6블럭 ilsin-steel@hanmail.net
해주(崔) 해주최씨종친회 02-307-2011
곡강(崔) 흥해최씨옥리파산남종친회 041)868-7750~3 충남 연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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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崔) 전주최씨 복야공계 군수공파 초계종친회 053-622-9060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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