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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뿌리 > 성씨의 유래 
「괴산피(皮) 「홍천피(皮)
피득창 (皮得昌)
조선의 개국공신 (開國功臣)으로 병조 판서(兵曹判書)와 전라 감사(全羅監司) 등을 지냈다

피위종(皮謂宗)

시조 피위종은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금오위상장을 역임하고 우리나라에 귀화하여 병부시랑을 역임하였다. 원래 피씨는 주나라 경사인 번중피의 제일아랫자인 피를 따서 성을 만들었다고 한다. 피위종의 아들 피인선이 정당문학, 좌복야를 지내고 홍천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홍천을 본관으로 하였다.
홍천 피씨 (洪川皮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으로 알려졌으며, 시조(始祖) 피득창(皮得昌)이 괴산(槐山)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면서 후손들이 괴산(槐山)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피씨는 문헌에 30여본이 나타나 있으나 괴산 피씨와 홍천 피씨외에는 시조 등을 알 수가 없다.

성씨. 본관은 홍천(洪川) · 단양 (丹陽) · 광주 (廣州) · 충주 (忠州) · 파주 (坡州) · 괴산 (槐山) 등 30여 본이 문헌에 전하는데, 그 중 몇 본이 현존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피씨의 연원에 대해서는 사적(史籍)에 전하는 바가 없으나, 《피씨세보》에 의하면 중국 주(周)나라에 번중피(樊仲皮)라는 경사(卿師)가 공명(功名)이 있어 그 아랫자 ‘ 피 (皮) ' 자를 따서 성으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
고려 충렬왕 때 원(元)나라의 금오위 상장 피위종(皮謂宗)이 동국안렴사(東國按廉使)로 고려에 들어와 여러 해를 묵는 동안, 풍물에 정이 들어 귀화하게 되자 충렬왕이 크게 기뻐하여 병부시랑을 제수하였다.
그의 아들 인선(寅善)이 정당문학(政堂文學) · 좌복야를 지내고 홍천군 (洪川君)에 봉해짐으로써 홍천으로 관적하게 되고, 둘째아들 인고(寅古)가 대상 · 평장사를 지내고 단산군 (丹山君)에 봉해짐으로써 단산(단양)으로 관적하게 되었다.
괴산 (槐山)은 충청북도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지대에는 잉근내군이라 하였으며, 신라시대에는 괴양군, 고려시대에는 괴주군으로 개칭하였다.
1403년(태종3)에 괴주지사로 고쳤으며, 1413년에 분리하여 괴산군이라 고쳐 불렀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득창 (得昌)의 아들 강지(康芝)가 장령을 지냈으며, 손자 정(釘)이 진사를 증손 소(燒)는 목사를 역임하여, 판서에 오른 후손 홍군(洪君), 통덕랑 경송(卿松), 방어사 동현(洞鉉)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그외 통정대부 종남(宗南)과 판관 세만(世萬), 통사랑 세담(世淡)이 유명했으며, 효자로 향민의 칭송을 받은 운손(雲遜), 통덕랑 경우(景祐), 참봉 봉준(鳳俊) 등이 가문을 빛낸 후손들이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피씨는 전국에 559가구가 있었는데, 북한지역의 100여 가구를 빼고는 경기 · 충북 · 경북 3개도에 대부분 분포되어 있었다. 1960년도 조사에서는 인구 3,346명으로 성별순위는 258성 중 제115위였고, 1985년도 조사에서는 가구수 1,339, 인구 5,440명으로 274성 중 제116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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