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한예는 중국 (中國) 송나라 8학사의
한사람으로 1206년(고려 희종 2년) 우리나라에 들어와 금자광록대부 문하시중평장사로
곡산부원군에 봉해 졌으며 후손들이 곡산에 살면서 본관을 곡산으로 하였다.
곡산한씨 (谷山韓氏)의 시조는 고려에서
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낸 한예(韓銳)인데, 그는 중국 송나라 출신으로 206년
8학사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들어와 곡산군에 봉해지고 본관을 곡산으로 하사받았다고
한다.
곡산 (谷山)은 황해도 북동단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십곡성인데 통일신라 경덕왕이 진서로 고쳐서 영풍군(평산)의
영현으로 삼았으며 고려초에 곡주로 개칭하였다. 조선 태조조에 곡산으로 고쳤고,
1895년 곡산군이 되었다. 별칭은 덕둔홀, 고곡, 진서, 상산 등이다.
희 (禧)가 고려때 밀직부사를 지냈으며,
손자 익(翊)은 판도판서에 올라 정당문학을 지낸 아들 진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조선 태조때 사헌부 감찰을 지낸 옹(雍)은 예의 6세손으로 사헌부 감찰, 능성군수 등을 거쳐 태종때 의정부 좌찬성,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또한 학자로 이름난 여유(汝愈)는 상수(象數), 병진(兵陣), 성률(聲律) 등에 능통했고, 치상(致相)의 아들 이원(以原)은 여러 외직(外職)을
지냈으며 경사(經史)와 시(詩) · 역학 (易學) 등에 뛰어났다.
그외 부윤을 역임한 덕후(德厚)와 학자시유(是愈) · 문건 (文健) 등이 명성을 날림으로서 곡산한씨의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곡산한씨(谷山韓氏)는 남한에 총 4,722가구, 21,19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직할시 일원
충북 음성군 대소면 오산리. 감곡면 오행리
경북 경주시 일원
충북 음성군 원남면 일원
경북 월성군 건천읍 금척리
경남 양산군 동면 내송리. 하북면 지산리,초산리
경북 월성군 서면 도리
경북 경산군 경산읍 상방동
경북 월성군 내남면 월산리
경북 경산군 진량면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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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는 한국의 최고 (最古)
역사를 지닌 이른바 삼한갑족(三韓甲族)이다.
본관은 오늘날 한씨 거의가 청주(淸州) 단본을 내세우고 있는데, 문헌에는 청주 외에 평산(平山) · 한양 (漢陽) · 안변 (安邊) · 양주
(楊州) · 곡산 (谷山) · 홍산 (鴻山) · 대흥 (大興) · 부안 (扶安) · 개성 (開城) · 함흥 (咸興) · 금산 (錦山) ·
단주 (湍州) 등 1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청주에서 분적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언제 어떻게 분적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씨는 멀리 고조선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청주한씨세보》에 의하면 기자조선(箕子朝鮮)의 마지막 왕인 준왕(準王)의 후대에 우성(友誠) · 우평 (友平) · 우량 (友諒)의 3형제가
있어, 각각 기씨(奇氏) · 선우씨 (鮮于氏) · 한씨 (韓氏)가 되었다고 하며, 따라서 청주한씨의 시조 한란(韓蘭)은 기자의 후예인 우량의
원손(遠孫)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종래 ‘ 기씨조선 (箕氏朝鮮) ' 으로 알려졌던 고조선사회는 실상 ‘ 한씨조선 ' 이고 , 준왕은 ‘ 기준 (箕準) ' 이 아니라
‘ 한준 (韓準) ' 이며 , 따라서 한씨는 기자의 후예가 아니라 한국의 고유한 씨족이라는 것이 사학계의 통설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고조선의 한씨는 마치 부여의 해씨(解氏), 고구려의 고씨(高氏), 백제의 부여씨(扶餘氏), 신라의 박씨(朴氏) · 김씨 (金氏),
발해의 대씨(大氏), 고려의 왕씨(王氏), 조선의 이씨(李氏)와 마찬가지로 한국 고유의 대성(大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