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대표하는 인물 (人物)로는 사문의 후손 포(褒)가 고려 때 기천 현령(奇川縣令)·풍해도 관찰사(豊海道觀察使) 등을 지낸 후 태산군(泰山君)에 봉해졌으며, 병부 시랑(兵部侍郞)을 역임한 엄(儼)과 그의 아들로 이부 시랑(吏部侍郞)을 지냈고 시산부원군(詩山府院君)에 봉해진 벽(壁)이 유명했다.
한편 숙종(肅宗)과 예종(睿宗) 때 문학(文學)이 뛰어났고 청렴 충직(淸廉忠直)하기로 이름난 경(慶)은 1101년(숙종 6) 즉위사(卽位使)가 되어 요(遼)나라에 다녀왔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중서문하평장사(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러 치사(致仕)했다.
그의 아들 6형제가 모두 관직에 올라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는데, 둘째 아들 사문(斯文)이 낙안 군수(樂安郡守)를, 네째 사행(斯行)은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막내 사제(斯悌)는 사평(司評)을 지내 태인 허씨 가문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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