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이름은 알 수가 없고 "낭충정공"이라는 사실만 전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명나라의 낭초라는 사람이 조선 인조때에
중국에서 배를 타고 황해도 웅진 부근으로 건너왔다고도 한다.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로 전해 오고 있다.
본관은 양주 (揚州) 단본이다.
시조는 낭충정공(浪忠正公)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 휘자(諱字)와 시대도
모르며, 한 질밖에 없는 족보가 없어져 세계(世系)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조선씨족통보》 에 중국 장쑤성 양주에서 왔다고 하며, 명나라숭정(崇禎) 연간인 1628 ∼ 44년(인조 6 ∼ 22)에 명나라의
병부시랑(兵部侍郞) 낭초(浪礎)가 한국에 귀화했다는 전설이 실려 있다.
또 《앙엽기( 葉記)》에도 야인투화자(野人投化者)의 후예라고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중국으로부터 귀화한 성씨임이 분명하다.
경기도 (京畿道) 중앙 남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 때 매성군(買城郡) 혹은 창화군(昌化郡)이라
하였는데, 통일신라(統一新羅) 경덕왕(景德王)이 내소(來蘇)로 고치고 고려(高麗)
초에 견주(見州)로 승격하였다가 1668년(현종 9) 양주(楊州)에 속하였다.
조선조(朝鮮朝)에는 다시 양주(楊州)로 개칭한 뒤 1895년(고종 32)
목(牧)을 군(郡)으로 승격시켰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 서울을 비롯한
경기도 일원과 충남 예산, 충북 충주 등지에
40 여 가구가 분포되어 있었고,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낭씨(浪氏)는
남한에 85가구, 32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