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노목 (시호 문충)은 기자를 따라온
노계의 후손이나 문헌이 없어져 고증할 수는 없다고 한다. 노목은 고려 인조때
이자겸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문하시중에 오르고 평난공신으로 함풍(함평)군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하고 본관을 함평으로 하였다.
본관은 함평 (咸平) · 강화 (江華)
· 개성 (開城) · 양주 (楊州) · 밀양 (密陽) · 광주 (光州) ·
수원 (水原) 등 60여 본이 있는 것으로 전하나, 모두
같은 시조의 분파로서 노씨의 세거지(世居地)이다.
중국 주(周)나라 때 백리(伯 )가 노(魯)에 피봉되어 그 후손이 노를 성씨로 삼게 되었다.
함평노씨의 시조는 고려말 공민왕 때 정윤(正尹) 벼슬을 한 노석(魯晳)이다.
함평 (咸平)은 전남에 있는 지명으로
함풍과 모평 2현(縣)의 합명(合名)이다.
함풍현은 본래 백제의 굴내현인데 신라때 함풍현으로 고쳤고, 고려 태조때 모평현으로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을 살펴보면 시조 목 (穆)의
증손 관도(貫道)가 고려때 수문전 태학사를 지내고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라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한편 신(愼: 시조의 7세손)은 공민왕때 홍건적을 토평하는데 공을세워 일등공신에 올라 상장군이 되고 함풍군을 습봉하였다.
조선조에 와서는 임진왜란때 이순신의 막하에서 무공을 세워 원종이등공신에 책록된 홍(鴻)은 훈련원 부정을 지냈으며 정유재란때 당포에 침입한
왜적을 격퇴시켜 공을 세운 대방(大邦) · 대련 (大連) ·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
함풍군 신 (愼)의 아들 3형제 대에서
3갈래로 나뉘어
장자 성안(成顔)의 계통은 나주파(羅州派)로,
둘째 희안(希顔)의 후손들은 무안파(務安派),
막내인 유안(有顔)은 함평파(咸平派)로 갈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