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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뿌리 > 성씨의 유래 
「경주설(薛)「순창설(薛)
설거백 (薛居伯)
설씨 (薛氏)의 시조 거백[居伯]은 신라 건국의 원훈으로 월성군 천북면 화산, 물천, 동산리와 안강읍 일대인 명활산 고야촌을 다스렸던 촌장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그는 기원전 57년 다른 5부의 촌장들과 함께 알에서 태어났다는 박혁거세를 초대 왕으로 추대하여 신라를 세웠다고 하며, 서기 32년봄 3대 유리왕때 고야촌이 습비부로 개칭되면서 설씨(薛氏)의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설거백 (薛居伯)을 시조로 받들고 서라벌 경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다가 36세손 자승(子升)이 고려 인종때 예부시랑을지내 고순화백(순창의 옛지명)에 봉해진 연유로 본관을 순창으로 이관하게 되었다
순창 (淳昌)은 전북 남쪽 중앙에 위치한 지명으로 원래 백제의 도실군인데 신라 경덕왕이 순화군으로 고치고 고려때에는 순창현이 되었다.
신라시대에 불유사상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던 사 (思 : 원효대사)와 총(聰 : 본명 설총지)의 부자는 설씨가 자랑하는 인물로 민족사에 남긴 찬란한 업적으로 후세에 추앙받고 있다.
아찬군 이금(伊琴)의 아들로 지금의 경북 경산군 자인면에서 태어난 원효대사는 그의 어머니 조씨가 유성이 품속에 드는 꿈을 꾸고 배었다고 하며, 그가 태어날때 오색 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한다.

그는 32살에 불문에 들어가, 661년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가는 길에 배를 기다리다가 큰 비를 만나 근처 토굴로 피신하여 밤을 지내게 되었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보니 그곳은 토굴이 아닌 옛무덤 속으로, 해골 옆에서 잠을 잤고 간밤에 마셨던 물은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만사는 생각하기에 따라 망상이 생기니 차별하는 마음을 버리면 토굴이나 무덤인들 어떠랴, 이 세상 갖가지 현상은 오직 자신의 마음가짐에서 유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리요 스승이거늘 어디에 가서 스승을 따로 구하랴" 하며 다시 돌아와 분황사에서 불교 보급에 힘써 독자적인 경지를 열었다.

그후 그는 문무왕의 딸 요석공주와 혼인하여 아들 총(聰)을 낳고 스스로 파계를 선언하여 승복을 벗고 소성거사로 자칭하며 참선과 저술에만 전념, 한국불교사상 가장 위대한 고승으로
일컬어졌다
최치원, 강수와 함께 [신라 삼문장]으로 손꼽히는 총은 이두(吏讀) 문학의 창시자로도 명성을 떨쳐 민족문학사에 찬란한 금자탑을 세웠다.

고려조에서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29세손 경(鏡)이 태조때 금자광록대부로 부원군에 봉해지고 39세손 신(愼)은 고종때 추밀원사로 순화백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들 공검(公儉)과 인검(仁儉)이 뛰어났다. 공검은 충렬왕때 밀직부사과 지첨의부사를 지내고 찬성사로 치사(致仕)하여 청렴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그의 아우 인검은 평장사를 역임했다.

한편 공검의 아들 지충(之沖)은 찬성사를 거쳐 영의정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 봉(縫)은 병부시랑을을 역임하였다.

조선조에 와서는 세종때 대사성에 오른 위(緯)가 시와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창덕궁 직장 훈의 맏아들 효조(孝祖)는 목사를 거쳐 호조참판을 지냈으며, 그의아우 계조(繼祖)는 계유정난에 공을 세워 정난삼등공신으로 옥천군에 봉해졌다
경주 설씨 7,689명, 순창 설씨 24,181명이 있다.(1985년)
전북 순창군 금과면 일원
함남 이원군 동면 신풍리

전남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
함남 단천군 아다면 연대리

경남 의령군 봉수면 서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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