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高麗) 때 중국(中國) 송(宋)나라의
난세를 피하여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 온 손 응(孫 凝)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일직 손씨 (一直孫氏)는 안동 손씨(安東孫氏)라고도
칭(稱) 하며, 그 선계(先系)는 고려(高麗) 때 중국(中國) 송(宋)나라의
난세를 피하여 우리나라에 귀화(歸化)해 온 손 응(孫 凝)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본성(本姓) 이 순씨(荀氏)였으나 고려 현종(顯宗: 제8대 왕, 재위기간: 1009 ∼ 1031)의 이름이 순(詢)이어서
그 음(音)이
같다고 하여 손씨(孫氏)의 성(姓)을 하사(下賜)한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그후의 세계 (世系)가 실전(失傳)되어
후손들은 고려 때 장군(將軍)을 지낸 간(幹)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복주(福州:
지금의 안동군 일직면 송리동)에 자리잡아 살면서 본관(本貫)을 일직(一直)으로
삼게 되었다. 일찍이 고려 시대에 일직(一直) 고을의 주인(主人)으로서 세도가문(勢道家門)의
기틀을 다져온 일직 손씨는 중시조 간(幹)의 6세손 홍량(洪亮)이 1287년(충렬왕
13) 일직에서 출생하여 6대의 왕조(王朝)를 거쳐면서 벼슬이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이르렀고 복주 부원군(福 州府院君)에 봉해져서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특히
그는 40여 년의 벼슬길에서 나라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 서 사양(斜陽)이
뉘엿거리는 고려 말기의 어려운 국정(國政)에 크게 이바지 하다가 1351년
(충정왕 3) 65세로 치사(致仕)하여 향리(鄕里)에서 운학(雲鶴)을 벗하여
여생을 보냈으며,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으로 복주(福州)에 피난하는 공민왕(恭愍王)을
중도에서 평복으로 맞이하여 난국에 대한 수습책을 진언하니 왕이 그의 충의에
감탄하여 <충정이 하나같이 곧은 사람이 늙을수록 나라위한 마음이 더하도다(子誠一直人
老而益篤)>라는 어시(御詩)와 함께 정평공(靖平公)의 시호(諡號)를
하사하였다. 1364년 난의 평정을 축하하러 개경(開京)에 갔더니 왕은 영정(影幀)과
구절산호용장(九節珊瑚龍杖: 용을 아로새긴 아홉 마디의 산호 지팡이)을 내리며 "경의
두 아들도 나를 섬기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그 후 그의 맏아들
득수(得壽)는 정순대부(正順大夫)로 밀직사 좌대언(密直司左代言) 등을 지내고
고려가 망하자 초계 군수 (草溪郡守)를 지낸 아들 웅발(雄發)과 함께 벼슬을
버리고 종적을 감추었으며, 차남 득령(得齡)은 봉익대부(奉翊大夫)로 전공
판서(典工判書) 겸 진현관 대제학(進賢館大提學)을 지냈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 가맥(家脈)을 이은 인물로는 복주부원군 홍량(洪亮)의 증손 관(寬:
영유의 아들)이 진성 현감(眞城縣監)을 지내고 밀양(密陽)의 용평리(龍坪里)로
이거(移居)하여 그 곳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어 오늘날 밀양군 산외면 다원리(密陽郡山外面茶院里)를
비롯한 영천(永川) · 김해(金海) 등지에 취락(聚落)을 이루게 되었으며,
그의 아들 조서(肇瑞)가 1435년(세종 17)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과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 병조 정랑 (兵曹正郞) 등을 거쳐 봉산 군수(鳳山郡守)로
나갔다가 성삼문(成三問) · 박팽년 (朴彭年) 등이 단종복위를 꾀하다가 순절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은거하며 호조 참의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학문(學問)이 뛰어나고 경전(經傳)과 도학(道學)에 정통하여 「심경연의(心經衍義)」와「근사록
연의(近思錄衍義)」를 저술했으며 시문(詩文)의 대가로서 당대의 석학(碩學)
김종직(金宗直)과 친교가 두터웠고, 문하(門下)에서 정여창(鄭汝昌) · 김굉필
(金宏弼) 등과 같은 거유(巨儒)를 배출하여 명망이 높았다. 그가 죽은 먼
훗날 정조(正祖) 임금은 예조(禮曹)에 명하기를 "한림 손조서는
드높은 명망과 절조가 있어 일컬을 만한데, 어찌하여 인물조에 올려 상세히
주를 달지 않는가(翰林孫肇瑞 卓卓有名節 可稱而何不入人物條, 詳細懸注也)"라는
유시(諭示)를 내렸으며, 1812년(순조 12)에는 이조 참의(吏曹參議)와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증직하고 그 자손에게 잡역(雜役)을 면하게 하였다.
그밖의 인물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을 모아 왜적(倭賊)과의 싸움에서
눈부신 훈공을 남긴 처눌(處訥)과 인조반정(仁祖 反正) 후 단성 현감(丹城縣監)을
지내고 정묘호란(丁卯胡亂)에 의병장(義兵將)으로 활약한 인이 유명했으며,
동지중추부사(同知中 樞府事) 필억(必億)의 아들 명대(命大)는 숙종(肅宗)
때 선전관(宣傳官)과 진도군수(珍島郡守)를 지내고 영조(英祖) 때 역신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平定)하는 데 공(功)을 세워 경상좌도 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에
승진하였으며 훈련도감 별장(訓練都監別將)과 선천 방어사 (宣川防禦使)를 역임하여,
현감을 지낸 처신(處愼) · 숙 (璹) · 좌랑 (佐郞) 단(湍) 등과 함께
학문(學問)과 도덕(道德)의 전통가문(傳統家門)인 일직 손씨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일직 · 안동 손씨 (一直, 安東孫氏)는 남한에 총 5,289가구,
22,21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주 (孫) 경주손씨종친회 02-2264-1343 서울
-중-을지로6-17...(거평프레아21층19호)
밀양 전국밀양손씨종친회 02-763-4402 서울 종로 -창신-293-5(4층)
경주 경주손씨부산종친회 051-634-9682 부산 -동-범일2-830-24(자유시장4층436호A)
일직(孫) 부산일직손종친회 015-207-4987 부산 사하구 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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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경주손씨종친회 054-773-7889 경북 -경주-성건-349...(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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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월성손씨문천재사종중 054-872-6203 경북 -청송-현서-모계-485...
밀양(孫) 밀양 전국밀양손씨종친회 011-868-2200 hanv2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