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안씨 (順興安氏)의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광주군 안방걸(安邦傑)의 후손으로,
고려 신종때 흥위위 보승별장을 역임하고 신호위 상장군에 추증되었으며 순흥현에 정착세거 하면서 후손들이 광주안씨에서 분적하여 관향을 순흥으로
삼게 되었다.
시조 자미의 묘는 경북 영주군 순흥면에 있었으나 없어지고 제단을 설치하여 매년 음력 10월 1일에 향사한다.
안씨는 문헌상에 109본관이 있었으나
6본을 제외한 나머지 본의 시조와 유래는 알 수가 없다.
안씨의 원래 성은 이씨였으나 806년(신라 애장왕 7년) 당나라 용서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와 개성의 송악산 아래에 정착하여 살던 이원의 아들
3형제가 864년(신라 경문왕 4년)에 왜구를 평정한 공을 세워 안국의 공신이라 하며 안씨를 하사하고 이름을 바꾸게 하였다.
큰 아들 이지춘은 안방준으로 이름을 바꾸어 죽산군에 봉해져서 죽산 안씨의 시조가 되고,
둘째 아들 이엽춘은 안방걸로 이름을 바꾸어 광주군에 봉해져서 광주 안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셋째 아들 이화춘은 안방협으로 이름을 바꾸어 죽성군에 봉해졌다.
성씨. 본관은 문헌에 109본이 전해지나 주요 본관은 순흥(順興) · 광주 (廣州) · 죽산 (竹山) · 탐진 (耽津) · 공산 (公山)
· 충주 (忠州) · 동주 (洞州) · 안산 (安山) · 제천 (提川) · 안강 (安康) · 주천 (酒泉) 등 10여 본이다.
그 중에서도 순흥 · 광주 · 죽산의 3본이 대본이며, 특히 순흥안씨는 전체 안씨 인구의 과반수를 상회한다.
안씨의 도시조는 당(唐)나라 사람인 원(瑗)이라고 하며, 그의 본성은 이씨(李氏)였는데 신라 애장왕 때 건너와서 정착했으며, 그의 세 아들
지춘(枝春) · 엽춘 (葉春) · 화춘 (花春)이 경문왕 때 왜구를 무찌른 공으로 안성(安姓)을 사성받고 각각 방준(邦俊) · 방걸 (邦傑)
· 방협 (邦俠)으로 개명하는 한편 죽산군(竹山君) · 광주군 (廣州君) 등에 봉해졌다고 한다.
죽산안씨의 시조 영의(令儀)는 방준의 7대손이고, 광주안씨와 순흥안씨는 광주군 방걸의 9대손인 홍미(弘美) · 자미 (子美) 형제에서 갈린
것이라고 한다.
죽산안씨는 영의를 시조로 하는 구죽산(舊竹山)과 순흥안씨에서 분적한 신죽산(新竹山)의 두 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상북도 (慶尙北道) 영풍군(榮豊郡)에
속해 있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급벌산군(及伐山郡)인데
통일신라(統一新羅) 경덕왕(景德王)이 급산군으로 고쳤고, 고려(高麗) 초에
흥주(興州)라 하였다가 성종(成宗) 때 순정(順政)으로 개칭하였다. 충목왕(忠穆王)
때 승격하여 순흥부(順興府)가 되었으며 1457년(세조 3)에 풍기 (豊基),
영천(榮川)에 나누어 편입시켰고, 숙종(肅宗) 때 다시 부로 복구하였다가
1895년 군(郡)으로 강등, 1914년 군을 없애고 봉화(奉化)와 영주(榮州)에
각각 편입시켜 영풍군에 속한 순흥면으로 남아있다.
순흥안씨는 시조 자미 (子美)의 아들
영유(永儒), 영린(永麟), 영화(永和) 3형제 대에서 가세가
일기 시작하여 훌륭한 인맥을 형성하였다.
우라나라 주자학의 거봉이었던 향(珦:개명은 송)은 상호군 영유(永儒)의 손자로,
상주판관을 비롯한 주요관직을 두루 역임했고, 충령왕때 판판도사사가 되어 섬학전(贍學錢)이라는 육영재단을 설치, 후진양성에 진력하여 유학의
학풍을 일으켰다.
향의 아들 우기(于器)는 우부승지와 밀직부사를 역임하고 대사헌을 거쳐 검교찬성사와
판전의시사 등을 지낸후 순평군에 봉해졌다.
호부 낭중에 추증된 득재(得財)의 후손에서는 밀직제학 석(碩)의 아들 5형제가 뛰어났다.
1324년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한 축(軸)은 [관동와주(關東瓦注)]라는 문집을 저술했고,
충렬, 충선, 충숙왕 3조의 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특히 그는 경기체가인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별곡(竹溪別曲)]을 남겨 문명이 높았고
흥녕군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우 보(輔)는 공민왕때 동지공거와 정당문학을 거쳐 동경 유수를 역임했다.
축의 아들 종원(宗源)은 대사성과 대사헌을 거쳐 판숭경부사가 되어 순성보조공신에 책록되어
순흥군에 봉해졌고, 청렴으로 문하찬성사에 발탁된후 공양왕때 판삼사사에 진봉되었다.
종원의 아들 3형제중 막내인 경공(景恭)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창업에 공을 세워 흥년군에
봉해졌다가 태종때 부원군에 진봉되었으며, 그의 아들 순(純)이 세종때 명신으로 유명했다.
순흥부원군 문개(文凱)의 손자 천보(天保)는 세종비 소헌왕후의 외조부로서 세종때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부윤 지귀(知歸)의 아들 침(琛)은 동지춘추관사가 되어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사예 돈후(敦厚)의 아들 당(塘)은 이조판서가 되어 선비를 뽑아 인재 등용에 힘썼다.
그는 강직한 성품으로 오직 나라 일에 전념했으나 소인들에게 미움을 받아 화를 입었다.
당의 세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오르자 그는 집안이 너무 성(盛)한 것을 염려하여
벼슬에서 사직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의정에까지 올랐는데, 청렴한 성품으로
녹으로 받은것 외에는 모아둔 재산이 없어 부인이 갑자기 죽자 장사를 치루지 못하여 남에게
빌려서 치르니 사람들이 그의 청백에 감복했다고 한다.
그밖에 순흥안씨를 빛낸 인물로는,양성 현감을 지내고 글씨와 그림으로 유명했던 정(珽)과
지돈령부사에 오른 자유(自裕)가 대표적이며, 한말에 와서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대궐에
들어가 통곡했던 병찬(秉瓚)과 충주의 황강 싸움에서 전사한 승우(承禹)가 뛰어났으며,
도산 창호(昌浩)는 [독립신문]을 창간하여 임시정부 육성과 민족 계몽운동에 진력했다.
진사 태훈(泰勳)의 아들 중근(重根)은 만주하르빈역에서 이또오 히로부미를 살해하고
[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이 쇠와 같고, 의사는 위대로움에 임할지라도 기운이 구름같도다]
라는 유시(遺詩)를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애국가를 작곡한 익태(益泰)와 함께 의절의
가문인 순흥안씨(順興安氏)를 더욱 빛냈다.
시조 자미의 세 아들 영유 (永儒:一派)
· 영린 (永麟:二派) · 영화 (永和:三派)를 파조로 하는 3파로 대별된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순흥안씨는 남한에 총 99,937가구, 417,59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 상주군 공검면 중소리
황해도 연백군 금산면 석천리
경북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
황해도 연백군 화성면 송천리
경북 예천군 용궁면 월오리
황해도 연백군 운산면 호산리
경남 진양군 대평면 상촌리
황해도 황주군 수풍면 영풍리
경남 함안군 가야면 신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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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 안정면 대평리 사방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