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안원린 (安元璘, 시호는 문열)은
고려시대에 정당문학 검교중추원사를 역임하고 탐진군에 봉해졌다.
그는 순흥안씨(順興安氏)의 시조 안자미의 7세손의 3형제(안원숭, 안원형, 안원린) 가운데 안원숭은 순흥안씨를 계승하고, 안원형은 신죽산안씨(新竹山安氏)를,
안원린은 탐진안씨의 시조가 되었다.
일부는 '강진안씨'라고 하나 탐진은 강진의 옛 지명이므로 같은 본관이라고 한다.
묘소는 전주시 삼천동 능내에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3일에 향사한다.
탐진안씨는 순흥안씨서 분적된
계통으로 고려 공민왕때 대제학을 지내고 순흥군에 봉해진
문숙공 목(牧)의 넷째 아들 안원린(安元璘)을 시조로 한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고려조에서 정당문학과 검교중추원사를 역임하고
나라에 공을 세워
탐진군에 봉해져서 후손들이 순흥안씨에서 분적하고 탐진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탐진 (耽津)은 전라남도
강진군에 속해 있던 옛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동음현인데
통일신라 경덕왕이 탐진현으로 고치고 고려때 강진으로 고쳤으며, 1895년 강진군이 되었다.
시조 원린의 아들 우 (祐)가 공민왕때
군부판서와 상호군, 지추밀원사 등을 거쳐 홍건적이
침입했을때 전공을 세워 무명을 떨쳤고, 찬성 사종(士宗)의 아들 지(止)는 조선 태종때 명신으로
유명했다. 특히 [지]는 시문에 능하고 해서(楷書)에 일가를 이루어 당대의 명필로 명망이 높았고,
세종 때는 정인지 등과 함께 용비어천가를 지어 왕에게 바쳤으며, 태종을 위하여 금자법화경을
썼다.
그 밖의 인물로는 군자감정을 지냈고 임진왜란때 의병장 곽재우 휘하로 들어가 유곡 싸움에서
공을 세웠던 기종(起宗)과 공조참의를 지낸 [용]이 유명했으며, 효제(孝濟)는 한말에 군수를
역임하여 독립운동가로 이름난 희제(熙濟), 창제(昌濟)와 함께 탐진 안씨의 의맥을 살렸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탐진안씨(耽津安氏)는 남한에 총2,399가구, 10,02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합천군 초계면 택리
전북 정읍군 입암면 정해리
경남 의령군 임면 입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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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 순흥안씨추원제 054-633-2187 경북 -영주-순흥-석교-229...
순흥 순흥안씨화수회 054-632-5522 경북 -영주-하망1-116...
순흥(安) 순흥안씨 제 3파 좨주공파 .종친회 054ㅡ631ㅡ1083 경북
영주시 안정면 대평리 사방골
안우 (安祐)
1352년(공민왕 1) 군부판서 응양군 상호군이 되고, 뒤에 지추밀원사를 거쳐 1358년 참지중서정사로서 안주 군민만호가 되었다.
다음해 홍건적이 침입하여 의주 정주 인주 등지가 함락되자 이방실(李芳實) 등과 함께 적을 대파하고, 이어 적이 서경까지 진출하자 이를 크게
무찌르고 적장 심자(沈刺) 황지선(黃志善)을 사로잡았다.
그 후 다시 패잔병을 모조리 소탕하고 돌아와 중서평장정사에 추충절의정란공신이 되었다.
1361년 다시 20만의 홍건적이 쳐들어오자 상원수가 되어 김득배(金得培), 이방실(李芳實) 등과 함께 적을 대파하고 도원수에 올랐다.
안지(安止)
1414년(태종 14) 친시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1416년 문과중시에 급제했다.
1420년(세종 2) 수찬, 1441년 예문관 대제학 등을 역임하고 다음해 공조참판으로 정인지(鄭麟趾)와 함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어 바쳤다.
1446년 호조참판으로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집현전 부제학 이조참판.
공조판서를 거쳐 1449년 예문관 대제학 영중추원사를 지내고, 봉조하가 되었다.
시에도 능했고 해서를 잘 써서 세종의 명으로 태종을 위해 <금자법화경(金字法華經)>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