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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강팽(彭)「절강팽(彭)
팽적 (彭적)
본래 중국 금릉 (金陵) 사람으로 고려 말에 내각학사(內閣學士)로서 원(元)나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공민왕비)를 배종(陪從)하고 들어와 우리나라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며 용강백(龍岡伯)에 봉해졌다.
시조 팽적이 우리나라에 정착세거 하며 용강백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은 용강 (龍岡)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평안남도 (平安南道)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대의 황룡국(黃龍國)인데 고려 때 황룡성(黃龍城)이라 칭(稱)했고 후에 용강(龍岡)으로 개명(改名)하였다. 1895년(고종32) 용강군(龍岡郡)으로 승격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시조 [적]의 손자 조(祖)가 조선에서 판중추부사를 역임했고, 그의 아들 양은 대사헌에 올라 크게 명성을 날림으로써 가문을 중흥시켰다.
한편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성(誠)은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한 양의 손자이며, 성의 아들 정현(汀顯)은 어모장군에, 성의 손자 호(湖)는 건공장군(建功將軍)에 올랐다.
그외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봉서(鳳瑞)와 상호군을 역임한 순(淳), 경대(敬大)가 유명했으며, 군자감정을 지낸 윤대(潤大)는, 공조참의를 역임한 지근(只根), 호조참판을 지낸 봉혁(鳳爀)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용강팽씨(龍岡彭氏)는 남한에 총 263가구, 1,04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방성리

충북 단양군 대강면 당동리
본관은 용강 (龍岡)과 절강(浙江)이 대본(大本)이며, 그 밖에 신평(新平) · 영천 (榮川) · 안악 (安岳) · 강령 (康翎) 등이 문헌에 나타나 있으나 시조가 미상이다.
용강팽씨는 고려 의종 때 적( )이 시조로 희성(稀姓) 중에서는 역사가 긴 편이다.
한편 절강팽씨는 임진왜란 때 원군으로 조선에 온 명(明)나라 장군 우덕(友德)의 후손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덕은 아들 신고(信古)와 함께 많은 전공을 세웠는데, 그 후손들이 조선에 귀화하였다고 한다.
절강팽씨는 주로 경남 창원 · 마산 · 김해 등지에 많이 살고 있고 , 반면에 용강팽씨는 주로 북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용강과 절강의 세보관계는 확실하지 않다.
1930년 국세조사 때에는 전국에 총 202가구가 있었으며, 1960년 조사에서는 인구 1,433명으로 성별순위는 258성 중 제134위였고, 1975년 조사에서는 가구수 405가구로 249성 중 제136위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에서 실시한 인구조사에 의하면 629가구, 2471명으로 총 274개 성 가운데서 137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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