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진씨의 시조 진 경(陳 鏡)은 고려 태조조에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시중(侍中)·상서(尙書)·태보(太保) 등을 역임하고 이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다.
그의 선계는 상고할 수 없으나, 경(鏡)의 16세손 의(懿)가 1296년(충렬왕 2) 삼척군에 봉해진 것과, 조선 초에 의주 병마사(義州兵馬使)를 역임한 충귀(忠貴)의 개국원종공신 녹권에 본관이 삼척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누대에 걸쳐 삼척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여양 진씨(驪陽陳氏) 족보를 살펴보면 여양군 총후의 증손 택(澤)이 삼척군 의(懿)의 증조라 하여 한 할아버지의 후손이라 하였으나, 1979년에 수보된 삼척 진씨 족보에 의하면 여양 진씨의 주장은 전후 계대가 맞지 않으므로 이를 부인하고 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선 개국공신 충귀의 증손 암수(巖壽)가 무과에 급제하여 연산군 때 임천 군수(林川郡守)를 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3형제가 모두 학문에 뛰어났는데, 둘째 아들 극효는 학행이 뛰어나 사림의 추앙을 받았다 셋째 아들 극성(克誠)은 조선조에 만호(萬戶)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영암(永闇)은 지극한 효행으로 정려가 내려져 가문을 빛나게 하였다.
그밖에도 광해군의 혼정을 개탄하고 사퇴했다가 인조반정 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오른 여기(汝起)와 숙천 부사 재성(再成), 지극한 효성으로 8년간이나 어버이의 병구환을 한 성진(聖鎭), 이조 판서(吏曹參判) 행은(行殷) 등이 삼척 진씨의 대를 이어 가문을 더욱 빛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