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박씨 (尙州朴氏)는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둘째 아들이며, 사벌대군(沙伐大君)에 봉해지고 사벌주(沙伐州:
지금의 상주)를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았다.
시조 박언창이 사벌대군 (沙伐大君)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상주(상산)으로
하게 되었다.
상산 (商山)은 경상북도 서쪽에 위치하는
상주(尙州)의 옛 지명으로 본래 삼한시대(三韓時代)에 진한(辰韓)의 영토였으나
185년(신라 벌휴왕 2, 고구려 고국천왕 7) 사벌국(沙伐國: 혹은 사불국)으로
독립해 오다가 신라 첨해왕(沾解王: 제 12대 왕, 재위기간: 247 ∼
261) 때 정벌되어 상주(上州)로 고쳐 군주(君主)를 두었다. 진흥왕(眞興王)이
상락군(上洛郡)으로 고치고 신문왕(神文王) 때 다시 사벌주(沙伐州)로 개칭되었다가
경덕왕(景德王) 때 와서 상주(尙州)로 하는 등 많은 변천을 거쳐 고려 성종(成宗)
때 귀덕군(歸德郡)이라 하여 영남도(嶺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현종
3) 다시 상주안무사(尙州安撫使)로 고쳐서 8목(牧)의 하나로 정하였다가
조선이 개국하여 관찰사(觀察使)를 두었으며 1910년 상주군(尙州郡)으로
개칭되어 함창군(咸昌郡) 일원이 편입되었고, 1988년 시(市)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조선조에 와서 원정의 증손 안신 [安臣]이
사관을 거쳐 우사간에 이른뒤 참판과 대사헌을
역임하고 각도 관찰사를 지내면서 백성들에게 선정을 배풀어 존경을 받았다.
또한 세종때 군자감 부정을 지낸 사화[士華]의 아들 세훈[世勳]은 탁월한 학식과 재능으로
조광조의 신임을 받았으나 기묘사화로 인해 화를 입었다가 후에 다시 기용되어
제용감첨정에 올랐다.
동생 세희[世熹]도 기묘사화로 강계에 유배되었다가 죽었으며, 세후[世煦]는 교서관 교리를
지내는 등 삼형제가 모두 가문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