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 변씨 (長淵邊氏)는 주(朱)나라 문하습비후(門下習秘侯) 대아찬 변 경(邊 鏡)의 증손(曾孫)인 변유영(邊有寧)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장연변씨갑오보(長淵邊氏甲午譜)」에 의하면 그는 1138년(고려 인종16) 중문지후(中門祗侯)로 연성부원군(淵城府院君)에 봉해지고 장연(長淵)에 정착세거(政着世居)하면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그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관향(貫鄕)을 장연(長淵)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잇게 되었으며, 유영의 7세손 영인(永仁:사온동정 용지의 아들)이 고려조에서 판전의사(判典醫事)를 지냈고, 그의 손자 처후(處厚)는 조선개국(朝鮮開國) 초에 춘장문과(春場文科)에 급제하여 태종(太宗) 때 소윤(少尹)을 지내고 세종조(世宗朝)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에 올라 가세(家勢)를 일으켰다.
한편 처후의 아들 대해 (大海)는 관찰사(觀察使)을 역임하고 슬하에 곤(崑)과 윤(崙)의 형제를 두었는데 이들이 교하 현감(交河縣監)과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을 각각 지내면서 명성을 떨쳤으며, 곤의 증손 사정(士貞)은 임진왜란 때 무공(武功)을 세워 변응정(邊應井: 원주 변씨)·변이중(邊以中:황주 변씨)과 더불어 임란의 <삼변충장(三邊忠壯)>으로 일컬어졌다. 당대에 성리학(性理學)의 대가인 일재(一齋) 이 항(李 恒)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연마한 사정(士貞)은 1592년(선조 25) 임란이 일어나자 순천(順天)에서 의병(義兵)을 일으켜 진주(晋州) 싸움에 파병하고 전라도(全羅道) 산간지방에서 20일 동안에 왜병 2천 명을 사살하는 등 빛나는 전공을 올려 <적개의병장(敵愾義兵將)>으로 불리웠다. 그외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사형(士亨: 사정의 형)과 거제 부사(巨濟府使)로 치적을 쌓았던 윤조(潤祖: 통제사 흡의아들),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 건중(建中:신천 군수 징의 맏아들) 등이 뛰어났으며, 호군(護軍)을 지낸 광후(光厚:처후의 아우)의 6세손 발(潑)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여 제용감 직장(濟用監直長) 의(誼), 거제 부사(巨濟府使) 진영(震英), 의금부사(義禁府使) 덕용(德龍) 등과 함께 가통(家統)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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