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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 서씨(南平徐氏)은 이천 서씨(利川徐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으로 아간공(阿干公) 서신일(徐神逸)의 원손(遠孫) 서 호(徐 灝)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호(號)는 누대(累代)로 남평(南平)에 세거(世居)해온 사족(士族)의 후예로, 그의 아들 효당(孝堂)이 조선조(朝鮮朝)에서 전생서 판관(典牲署判官)을 역임하고 판서(判書)에 추증되었으며, 손자 우(祐)와 지(祉)가 크게 현달(顯達)하여 세거지(世居地)인 남평(南平)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이천 서씨 (利川徐氏)에서 분적했다고 한다. 현감(縣監) 우(祐)의 아우 지(祉)는 학문(學問)과 문장(文章)으로 명망이 높아 석학(碩學) 김종직(金宗直)의 격찬을 받았으며, 1498년(연산군 4)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전적(典籍)과 이조 정랑(吏曹正郞)을 지내고 중종반정(中宗反正)에 공(功)을 세워 순천 부사(順天府使)로 나갔다가 돌아와 승지(承旨)가 되었으나 폐위(廢位)된 단경왕후(端敬王后: 중종의 비 신씨)의 복위(復位)를 상소하다 탄핵을 받은 박 상(朴 祥)과 김 정(金 淨)의 무고함을 변호하다가 대사간(大司諫)으로 있던 이 행(李 荇)과의 의견 충돌로 벼슬을 사직하고 향리(鄕里)로 돌아갔다.
그 외 참봉(參奉) 연(演)의 아들로 현감(縣監)을 지낸 탁(晫)과 전적(典籍)을 역임한 국정(國楨)의 부자(父子)가 남평 서씨를 빛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