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비밀번호
회원가입  |  아이디, 비밀번호 찾기
2026년
음 : 09-17
양 : 10-27
서기:2026년
단기:4359년
불기:2570년
위아래 - 세상 끝난 뒤에도 -
 
 home > 뿌리 > 성씨의 유래 
서 한 (徐)
고려때 봉익대부 판도판서등을 지냈다 .
대구 서씨 (大丘徐氏)의 시조(始祖) 서 한(徐 )은 누대(累代)에 거쳐 대구(大丘)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해 온 사족(士族)의 후예(後裔)로 고려조에서 군기소윤(軍器少尹)을 역임하여 후손들이 대구(大丘)를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1702년(숙종28)에 간행된 「대구서씨세보(大丘徐氏世譜)」에 의하면 대구 서씨는 이천서씨(利川徐氏)의 시조 아간공(阿干公) 서신일(徐神逸)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으며,「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동국만성보(東國萬姓譜)」 등의 문헌에도 이천 서씨에서 분적(分籍)한 것으로 적고 있으나 계대 (系代)를 고증(考證)할 수 없다.
대구 (大邱)는 영남지방의 중앙부에 위치한 행정중심지로 본래 신라시대에 달구화현 또는 달불성으로 불리우다가 757년에 대구(大丘)로 개칭되고, 1419년 대구군으로 승격되었다.
대구(大丘)가 대구(大邱)로 개칭된것은 지금부터 약 190년 전의 일이다.
1750년 대구의 유생 이양채가 대성 공자의 휘(諱)가 구(丘)자라고 개칭을 원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왕의 윤허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정조때부터 점차 대구(大邱)로 쓰이기 시작했다.
시조 소윤공 (少尹公) 서한의 다음 대부터 5대가 실전되었고, 고려 말엽에 이르러 7세 익진(益進)이 판전객시사를 역임했으며, 그의 아들 의(義)가 호조 전서를 지냈으나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낙향하였다.
일찍이 영남내륙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문장과 도덕을 겸비한 세도가문으로 기틀을 다져온 대구서씨는 조선 개국과 함께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명문의 반열에 올랐다.

대구서씨의 인맥으로는 뛰어난 학덕문장과 예지로 조선초기의 법치덕화에 기여한 사가정(四佳亭) 거정(居正)과 약봉(藥峯) [성]을 들 수 있다.
달천부원군 미성(彌性)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거정은 세종과 성종대에걸쳐 45년간 벼슬길에 있으면서 육조의 판서를 거쳐 두번이나 대사간에 올랐으며, 특히 그는 문장과 글씨를 비롯하여 성리학은 물론 한문학과 천문(天文),지리(地理),의약(醫藥)에 이르기까지 정통하여 신라 때부터 조선초기에 이르기까지 시문(詩文)의 정수만을 골라 실은 [동문선(東文選)]과 [동인시화(東人詩話)]를 비롯하여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동국통감(東國痛鑑)], [필원잡기(筆苑雜記)], [태평한화(太平閑話)], [사가집(四佳集)], [오행총괄(五行摠括)]등 수많은 편저서를 남겨 오늘날 귀중한 역사자료가 되고 있다.

선조때 별시문과에 급제했던 약봉(藥峯) [성]은 5도의 관찰사와 3조의 판서를 거쳐 인조때 판중추부사에 올랐으며, 그의 후손에서 3대 상신(相臣:宗泰, 命均, 志修)과 3대 대제학(大提學:有臣, 榮輔, 箕淳), 3대 문장(文章:命膺,浩修, 有 )이 배출되어 대구서씨의 가장 거대한 인맥을 이루었다.

조선 3대 현모(賢母)로 손꼽히는 약봉(藥峯)의 어머니 고성이씨는 시골에 살다가 일찍 과부가 되자 아들의 교육을 위해 한양에 올라와 지금의 만리동 약현에 살면서 자식을 훌륭하게 성장시켰으나 만년에 눈까지 멀었다.

[성]의 다섯 아들중 장남 경우(景雨)는 인조조에 우의정으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그의 아들 원리(元履)가 한성부우윤과 호조참판을 거쳐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했고, 손자 문중(文重)은 숙종때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성의 둘째 아들 경수(景需)의 인맥으로는 그의 아들 상리(祥履)가 병조참의을 거쳐 승지에 올랐으며, 현손 종제(宗悌)는 딸이 영조의 비(정성왕후)가 되어 영의정에 추증되고 달성부원군에 추봉되었다. 종제의 현손 용보(龍輔)는 순조때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오르고 후에 영중추 부사에 이르러 가세를 더욱 일으켰다.

성의 네째 아들 경주의 집안에서는 경주의 증손 종태(宗泰)가 좌, 우, 영의정을 모두역임했고 그의 아들 명균(命均)은 우, 좌의정을 지냈으며, 아들 지수(志修)가 영의정에 올라 명문의
지위를 굳혔다. 지수의 아들 유신(有臣)은 형,호,예조의 참판을 지내고 한성부 좌우윤을 거쳐 양관대제학에 올랐다.
그의 아들이 순조조 [죽석문집(竹石文集)]을 남긴 대제학 영보(榮輔)이며 손자는 헌종과 철종대에 걸쳐 대제학을 지내며 청백리로 유명했던 기순(箕淳)으로 한집안에서 6대에 걸쳐 3대 정승과 3대 대제학을 배출하여 대구서씨의 골격을 이루었다.

한편 대사간 문유(文裕)의 손자 명응(命膺), 증손 호수(浩修), 현손 [유구]가 3대가 문장으로 명성을 떨쳐 학문의 전통을 세 웠다. 북학파(北學波)의 비조로 일컬어진 명응(命膺)은 역학(易學),실학(實學)을 깊이 연구하여 명망이 높았고 역대 국악의 악보(樂譜)를 집대성한 [대악전 · 후보 (大樂前 · 後譜 )]를 간행하였으며, 그의 아들 호수(浩修)는 기행문집인 [연행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농업백과전서인 [임원경제십육지]를 저술한 유구는 농정에 관한 경론 및 상소문을 써서 영농법 개혁을 누차 역설했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유예지]를 저술하여 오늘날 국악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영상(領相)의 벼슬에서부터 외직(外職)인 방백수령에 이르기까지 6백 여명의 명신현관을 배출해 낸 대구서씨는 그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학덕과 문행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한말에 와서도 개화부국강병을 위하여 헌신한 인사와 구국운동의 대열에 앞장서서 의병장으로 신명을 바친 훌륭한 인재가 대거 배출되어 명문 대구서씨의 가통을 지켰다
전북 익산군 망성면 장성리
경남 의창군 내서면 천계리

경북 달성군 일원, 상주군 일원
경북 청도군 각남면 신당동

경북 고령군 개진면 오사동
함남 흥원군 용원면 도용리
이천 (徐)    이천서씨종친회    080-052-9502      
달성    대구달성서씨대종회    02-2234-0542    서울 종로 -숭인-234-82(동일빌딩412)   
이천    이천서씨대종회    02-793-8252    서울 용산 -한강로3-40-8(신용산빌딩4층)   
서    서씨부산화수회    051-863-5579    부산 -부산진-양정1-390...(양정상가2-62호)   
이천(徐)s    목사공파    028025698    서울시흥시금천구시흥 4동875-1   
부여(徐)    부여서씨종친회    041-573-0077    충남 천안시 봉명동 77-22    jeongbeom@yahoo.com
이천    이천서씨절효공파대종회    062-525-2958    광주-북-유-112-10(유동타이어3층)
이천    이천서씨 감무공 (병부상서)파    02-9-6419-9119    서울 동대문구 재기 2동 1163번지    shm39861@hananet.net
달성    달성서씨남계공종중    054-975-5275    경북 -칠곡-석적-중지(산)-59   
달성    달성서씨중방학계회    053-811-6226    경북 -경산-중방-519   
서씨    서씨종친회    054-272-3534    경북 -포항-남-송도-470...   
 
 
 
 
위원회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제휴문의 | 광고문의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민주로 32번길 29 (쌍촌동)     상호명 : 광산탁씨전자족보운영회
단체고유번호: 410-80-40462  대표: 탁인석    전화번호 062-374-0045
© HUMEN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