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여륭 (餘隆)은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태자이며 원래 백제왕의 성씨인 부여(扶餘)씨였으나 나당 연합군에
패하고 당나라에 갔을 때 당나라 고종이 서씨를 하사하고 능진도총에 임명했다고도
한다. 그후에 다시돌아왔으나 후대는 알 수가 없다. 원손 서존(徐存)은 1세
조상인 서신일의 6대 후손으로 고려에서 병부상서를 지내고 태원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원래 성씨인 부여를 본관으로 하였다.
[인구] 13,041명이 있다.(1985년)
「부여서씨세보 (扶餘徐氏世譜)」에 의하면
660년(백제 의자왕20, 신라 무열왕 7) 백제가 나당 (羅唐) 연합군의
침공을 맞아 계백(階白)의 황산벌 혈전을 마지막으로 멸망되자 의자왕은 태자
(太子) 등 2,000여 명과 함께 당(唐)나라 무장(武將) 소정방(蘇定方)에게
압송되어 그 곳에서 죽으니, 당제(唐帝)는 의자왕에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의
품계를 내리고 의자왕의 아들 융 (隆)에게는 서씨(徐氏)의 성(姓)을 하사(下賜)하였으며
웅진도독(熊津都督)에 임명하여 본국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부여 서씨의
문호(門戶)가 열리게 되었으나 그후의 세계(世系)가 실전 (失傳)되어 융의
원손(遠孫)으로 고려조(高麗朝)에서 병부 상서(兵部尙書)를 지내고 태원군(太原君)에
봉해진 존(存)을 일세조(一世祖)로 받들고 부여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부여 (扶餘)는 충청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소부리(일명 사비)인데
경덕왕때 부여현으로 개칭, 1914년 부여군이 되었다.
세계가 실전되어 융의 원손으로
고려조에서 병부상서를 지내고 태원군에 봉해진 존(存)을 1세조로 받들고 부여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는 조선 선조때 문무를 겸재한 현신으로 유명했던 익(益)이
군수를 지내고 종부시 첨정으로 순문관이 되어 북방 경비를 맡았으며, 이율곡을 구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같이 화를 입었고, 시조(時調)를 잘하여 명망이 높았다.
한편 익의 아들 6형제중 장남 용갑(龍甲)이 선조때 영양 현감과 덕천 군수을 지내고
광해군때 사색당파의 하나인 대북파(大北派)가 일으킨 계축 옥사(癸丑獄事)에 연루되어
네째 아우인 양갑(羊甲)과 함께 화를 입었고 뒤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그밖의 인물로는 필원의 아들로 목사를 지낸 경조(敬祖), 의금부 도사 정훈(正勳),
사헌부 감찰 계훈(啓勳), 돈령부 도정 운휘(雲輝), 석조(錫祚) 등이 유명했으며,
호조정랑 규달(逵達)은 현감을 진문(鎭文), 공조참판 무덕(武德)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부여서씨(扶餘徐氏)는 남한에 총 3,032가구,
13,04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남 개천군 일원
이천 (徐) 이천서씨종친회 080-052-9502
달성 대구달성서씨대종회 02-2234-0542 서울 종로 -숭인-234-82(동일빌딩412)
이천 이천서씨대종회 02-793-8252 서울 용산 -한강로3-40-8(신용산빌딩4층)
서 서씨부산화수회 051-863-5579 부산 -부산진-양정1-390...(양정상가2-62호)
이천(徐)s 목사공파 028025698 서울시흥시금천구시흥 4동875-1
부여(徐) 부여서씨종친회 041-573-0077 충남 천안시 봉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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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이천서씨절효공파대종회 062-525-2958 광주-북-유-112-10(유동타이어3층)
이천 이천서씨 감무공 (병부상서)파 02-9-6419-9119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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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달성서씨남계공종중 054-975-5275 경북 -칠곡-석적-중지(산)-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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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 서씨종친회 054-272-3534 경북 -포항-남-송도-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