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화양씨 (中和楊氏)는 고려(高麗) 고종(高宗: 제23대 왕, 재위가간: 1213∼1259) 때 정승(政丞)을 역임하고 당악(唐岳: 중국의 옛 지명) 군(君)에 봉해진 포(浦)를 시조(始祖)로 하고 중화(中和)를 본관(本貫)으로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그 후 포(浦)의 아들 동무(東茂)가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경무(慶茂)가 문하시중(門下時中)을, 경무(慶茂)가 문하시중(門下時中)을, 견무(堅茂)가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고, 5세손 원격(元格)이 이조 판서를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8세손 희지(熙止)는 성종(성종)때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호당(湖堂)에 뽑혔고 대사간(大司諫)과 관찰사(觀察使)·도승지(都承旨)를 거쳐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에 올랐다. 또한 학자(學者)로 이름난 덕록(德祿)은 임진왜란 때 종질(從姪) 의직(懿直)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평양 수복(平壤收復)과 군량미를 조달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의직(懿直)의 증손현망(顯望)은 현종(顯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군수(郡守)·부사(府使) 등 외직을 역임하면서 선정(善政)을 베풀어 명망(名望)이 높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