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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양(楊)「안악양(楊)「밀양양(楊)「중화양(楊)「청주양(楊)

 휘 (諱): 양만수(楊萬壽), 안악군(安岳君)

  안악 (安岳)은 황해도(黃海道) 북서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양약군(楊岳郡)인데, 고려(高麗)초에 안악(安岳)으로 고치고 현종(顯宗) 때 풍주(豊州)에 속하였다가 1106년(예종1) 감무(監務)를, 1348년(충목왕 4)에 승격하여 지군사(知郡事)를 두었다.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와 선조(宣祖) 때 현(縣)으로 강등되었으나 1608년(선조 41)에 안악군(安岳郡)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안악 양씨 (安岳楊氏)의 시조(始祖) 양만수(楊萬壽)는 상당백(上黨伯) 기(起 : 청주 양씨 시조)의 셋째 아들로, 고려(高麗)에서  전서(典書)를 지냈고 안악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청주 양씨 (淸州楊氏)에서 분적(分籍)하여 본관(本貫)을 안악(安岳)으로 하고 세계(世系)를  이어왔다.만수의 아들 정간(貞幹)은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였고, 증손 식(湜)이 좌찬성(左贊成)에 올라 안원군에 봉해졌으며, 식(湜)의 맏아들 정(汀)이 판서(判書)를, 그리고 둘째 아들 호(浩)와 셋째 아들 형(泂)이 현령(縣令)을 역임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안악 양시(安岳楊氏)는 남한(南韓)에 총 90가구 38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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