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정씨 (光州鄭氏)의 시조 정신호(鄭臣扈)는
고려 충선왕과 충숙왕조에 걸쳐 상호군을 지내고 봉은사 진전직으로 삼중대광
문하찬성사에 추봉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1일세조로 하고 본관을 광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광주 (光州)는 전라남도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무진주인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 무주라
개칭하였다.
고려 건국 이래 940년때 처음으로 광주라 개칭하였으며, 그뒤 996년에 해양현이라 이름했고, 1259년에 기주라 했다가 1275년에 다시
무주라 칭하였다.
그후 1310년에 화평부, 1362년에 무진부, 1373년에 광주목으로 하였는데, 그후에도 여러차례의 관할 변경이 있었다
정만종 (鄭萬鍾)은 1516년(중종 11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정언, 지평, 장령, 우부승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1539년 예조참판으로 진위사(陳尉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후
한성부좌윤을 거쳐 충청도, 함경도, 경상도 등의 관찰사를 지냈다.
정사호(鄭賜湖)는 이조참의,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후 황해도관찰사, 이조참판, 동지춘추관사, 한성부윤 등을 거쳐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정사위(鄭士偉)는 156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춘추관 기사관을 겸하여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그후 도승지,
전라부윤 등을 거쳐 1591년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다음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참의로 왕을 평양에 호종(扈從)했고, 세자를 따라
강계로 가던 도중에 숨을 거두었다.
또한 정이주(鄭以周)는 1568년(선조 1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갑과로 급제 1570년 예조좌랑으로 <명종실록>편찬에 참여하고
그후 정언, 지평, 정주목사 등을 지냈다.
그리고 한말에 정춘수(鄭春洙)는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독립선언문에 서명하고 옥고를 치른 뒤 독립운동과 종교운동에 종사했다.
영조 때 화가로 이름난 정선(鄭敾)은 한국 산수화의 독자적인 특징을 살려 강한 농담(濃淡) 대조위에 청색(靑色)을 주조(主調)로 한 새로운
화풍( 風)을 개척하여 심사정(沈師正), 조영석(趙榮 )과 함께 삼재(三齋)로 일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