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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배(裵)「곤산(곤양)배(裵)「김해(분성)배(裵)「달성배(裵)「성산(성주)배「흥해배(裵)

일세조  휘(諱): 배맹달(裵孟達), 곤산군昆山君)
       자(字): 달지(達之), 시호(諡號):양호(襄胡)

곤산 (昆山)은 경상남도 사천군(泗川郡)에 속해있는 곤양(昆陽)의 옛 지명으로 고려 때 곤명현(昆明縣)이라 하였고, 1018년(현종 9) 진주(晋州)에 속하였다가 조선 세종(世宗) 때 남해현(南海縣)과 합하여 곤남군(昆南郡)이 되었으며, 1437년(세종 19)에는 다시 나뉘고 진주의 금양부곡(金陽部曲)과 합하여 곤양(昆陽)으로 고쳤다. 1895년(고종 32) 사천(泗川)에 속하였다가 곧 회복하여 군(郡)이 되어 진주부 관할이 되었고, 1913년 군을 폐하고 서면(西面), 금양면(金陽面)은 하동(河東)에 소속되었으며 그 나머지는 사천에 병합되어 곤양면(昆陽面), 곤명면(昆明面)으로 남아 있다

곤산 배씨 (昆山裵氏)의 일세조(一世祖) 맹달(孟達)은 달성군(達城君) 운룡(雲龍)의 13세손으로 조선 세종(世宗) 때 내금위장(內禁衛將)을 거쳐 1454년(단종 2) 무과에 급제하고, 세조(世祖)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에 올라 정헌대부(正憲大夫)로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특진되었으며 서강군(西江君)에 봉해졌다가 곤산군(昆山君)에개봉(改封)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달성 배씨(達城裵氏)에서 분적(分籍)하여 관향을 곤산(昆山)으로 삼게 되었다. 곤산 배씨의 인맥으로는 맹달(孟達)의 아들 4형제가 현달(顯達)했고, 그의 후대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어 가세가 크게 융성하기 시작했다.

맹달의 맏아들 숙흥 (叔興)은 조선조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거쳐 진주 병마절도사(晋州兵馬節度使)를 지냈으며, 둘째 사종(嗣宗)은 성종(成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양지 현감(陽智縣監)을 역임했으나 연산군(燕山君)이 즉위하여 난정이 계속되자 이를 개탄하여 벼슬의 뜻을 버리고 향리(鄕里)로 돌아가 음애(陰崖) 이 운(李 耘)을 비롯한 충암(沖菴) 김 정(金 淨) 등과 도의(道義)를 교유했다.

한편 절도사 숙흥의 손자 언구(彦矩: 감찰 치인의 둘째 아들)는 무과에 급제하여 주부(主簿)를 지냈고, 그의 아우 언손(彦孫)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으며, 임진왜란 때 순절한 치례(致禮)의 아들 언필(彦弼)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했다.

그밖의 인물로는 치지(致智)의 아들 수(洙)가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했고, 현감 사종(嗣宗)의 증손 승조(承祖:증갑의 아들)와 운조(雲祖:용양위 부호군을 지냄)형제가 유명했다.

조선 예학(禮學)의 조종(祖宗)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했던 승조(承祖)는 선조(宣祖) 때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으나 벼슬의 뜻을 버리고 김 집(金 集),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과 교유하며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에 진력했으며 문하에서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여 문명을 떨침으로서, 광흥 도사(廣興都事)를 지내고 예조 좌랑(禮曹佐郞)에 추증된 익립(翊立), 군자감 직장(軍資監直長) 시창(時昌), 횡성 현감(橫城縣監) 명성(命晟)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곤산, 곤양 배씨(昆山, 昆陽裵氏)는 남한에 총1,174가구, 4,88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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