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해배씨 (興海裵氏)는 고려조에서 검교장군에
오른 경분(景分)을 1세조로 계대하며,
그의 6세손 전(詮)이 혜왕때 조적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세워 일등좌
명공신에 책록되고
흥해군에 봉해졌으므로 흥해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흥해 (興海)는 경북 영일군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본래 신라의 퇴화군인데 경덕왕이 의창군으로
고쳤고 고려 초에 흥해로 고쳤고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내려오다가 1914년 영일군으로
병합되어 그 일부지방은 1973년 이후 의창읍으로 내려오다가 1983년 흥해읍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씨족통보]와 1764년(영조40)에
편찬된 [갑신합보]에는 배씨의 중시조인 현경(玄慶)의
6세손 오룡(五龍)을 파조로 기록하고 있는데, 계대 소목(昭穆)이 자세하지 않고
각파의 이론(異論)이 있어 [곡강세첩]에 밝혀진 바에 따라 경분(景分)을 파조로 상고한다.
대표적인 인맥을 살펴보면 흥해군 전(詮)의 아들 4형제 중 장남 상도(尙度)와 세째 상지(尙志)
후대에서 가문이 크게 융성하기 시작하였다.
일찌기 목은 이색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한 상도(尙度)는 보문각 직제학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둔(屯)이 조선 태조때 형조참의와 황해도 관찰사을 역임했고 슬하게
아들 처눌(處訥)과 지눌(止訥)을 두어 대를이어 가문을 중흥시켰다.
한편 형 상도와 함께 목은에게서 글을 배웠던 상지(尙志)는 고려말에 벼슬이 판사복시사에
이르렀으나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지자 벼슬을 단념하고 안동 금계촌으로 내려가 은거하면
잣나무(栢)와 대나무(竹)를 심고 호를 백죽당(栢竹堂)이라 하였다.
그후 조선조에서 수차례에 걸쳐 벼슬을 내리고 그를 불렀으나 끝까지 절의를 지켰다.
그외 여흥 부사를 지내고 원종공신에 올랐던 효숭(孝崇)과 옥과 현감을 지낸 효건(孝騫),
세조때 언양 현감을 역임한 효사(孝思) 3형제가 뛰어났으며,
충좌위 부사과 천석(天錫)의 맏아들 삼익(三益)은 황해도 관찰사로 나가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들의 구제에 진력하여, 아우 삼근(三近)과 함께 대를 이어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흥해배씨(興海裵氏)는 남한에 총 4,891가구,
19,82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 안동군 풍산읍 매곡동
황해도 은율군 장연면 율리
경북 영양군 수비면 수하동
황해도 신천군 문무면 추능리
경북 봉화군 봉화읍 석평리
황해도 삼강면 청용리
배 배씨대종회 02-722-0334 서울
종로 -내자-19(사학회관803호)
배 배씨부산종친회 051-466-7593 부산 -동-초량3-1147...(국제오피스텔1106호)
경주(裵) 배훈 0086)-433-2650200 연길시 국자가 baby_boy2@hanmail.net
경주(裵) 경주 018-383-5668 의정부시 신곡동 970주공APT902-606 415@korea.com
배 전남배씨종친회 062-232-8020 광주-동-금남로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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