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배씨 (星山裵氏)는고려때 삼중대광으로
벽상공신에 오른 위준(位俊)을 파조로 받들고,
그의 현손 인경(仁敬)이 충선왕때 추밀원사를 지낸후 흥안(성산) 부원군에 봉해진 연유로
성산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1764년에 편찬된 [갑신합보]에는 중시조
현경(玄慶)의 현손인 사혁(斯革)의 둘째아들
천룡(天龍)을 파조로 기록하고 있는데, 계대 소목이 자세하지 않으므로 위준(位俊)을 파조로
계대(系代)하는것이 정확하다는 이론이 지배적이다.
성산 (星山)은 경상북도
남서쪽에 위치한 성주(星州)의 옛 지명으로, 래 고대 육가야국(六伽倻國)의
하나인 성산가야국(星山伽倻國)인데 신라가 멸망시켜 본피현(本彼縣)이라 하다가
757년(경덕왕 16)에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하여 성산군(星山郡)에 속하였다.
그 후 벽진군(碧珍郡)으로 고쳤고 940년(고려 태조 23) 경산부(京山府)로
개칭하였다가 경종(景宗) 때 강등하여 광평군(廣平郡)이 되었으나, 995년(성종
14) 대주도단련사(岱州都團練使)를 두었으며 현종(縣宗) 때 다시 경산부(京山府)로
승격하여 1군 14현을 영속하였다. 충렬왕조(忠烈王朝)에 와서는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로
승격한 후 성주(星州)로 고쳐 목(牧)을 두었고, 충선왕(忠宣王)이 다시
경산부로 강등하였으나 조선(朝鮮) 태종(太宗) 때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변천을 거쳐 인조(仁祖) 때 성산현(星山縣)으로 강등되었으나
1895년(고종 32) 성주군(星州郡)으로 개칭되었다.
성산배씨는 흥안부원군 인경 (仁敬)의
아들 문적(文迪)과 무적(武迪)이 크게 현달하여
성산배씨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다.
고려 말에 판추밀원사을 지낸 문적(文迪)의 손자 진손(晋孫)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세우고 공조판서를 역임했으며, 그의 아우 진후(晋后)는 태종때 좌승지를 거쳐
세종때 좌사간에 올라 청백함으로 명망이 높았다.
조선 세종조에서 지례 현령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던 규는 진손(晋孫)의 맏아들로
이조참의를 거쳐 대사간을 지냈으며 탁월한 문장으로 관서의 공자(孔子)로일컬어져서
쌍성 총관을 지낸 아우 구(矩)와 함께 가문을 중흥시켰다.
삼한벽상공신 무적(武迪)의 6세손 극렴(克廉)은 진주,상주의 목사와 계림,화령의 부윤을 지내고 우왕때 경상도 도순문사가 되어 진주와 사근역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했다.
성산복야공파는 고려 말에 좌복야를 지낸 영찬(英贊)을 기일세(起一世)로 하고 있다.
[배씨대족보]에 의하면 그는 달성군 운룡(雲龍)의 10세손이며 상서좌복야와 판추밀원사를
지낸 천경(天慶)의 네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으나 관계문헌의 고증에 따라 성산파(星山派)의
지파(支派)라는 이론이 지배적이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성산,성주배씨는 남한에 총 22,241가구,
91,63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죽대리
경북 성주군 대가면 도남동
경북 달성군 옥포면 송촌동
경북 금릉군 조마면 신안동
경북 의성군 비안면 쌍계동
함남 영흥군 억기면 양중리, 향하리
경북 고령군 덕곡면 본리동
배 배씨대종회 02-722-0334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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