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 호장 (戶長)을 지내고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에
추증되었다. 그의 선계(先系)는 문헌(文獻)이 실전(失傳)되어 상고(詳考)할
수 없으며, 「조선시족통보(朝鮮氏族統譜)」의 기록에는 고려 때 사람인 군우(君祐)의
손자이며, 경질(景質)의 아들이라 전(傳)하고 있다.
시조의 묘는 전해지지 않는다. 음력 10월 14일 향사한다.
후손들은 잠 (岑)을 시조(始祖)로 하고
양주(楊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왔다.
양주 (楊州)는 경기도 중앙 남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때 매성군 혹은 창화군이라 하였는데, 통일신라 경덕왕이 내소를 고치고 고려
초에 견주로 승격하였다
조선조에는 다시 양주로 개칭하였다.
잠의 증손 계생 (啓生)이 조선이 개국한
후 이조판서를 역임하였고, 문장이 뛰어나 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계생의 동생 말생(末生)은 태종의 총신(寵臣)으로 병조판서를 지냈고, 세종때 예문관 대제학을 거쳐 영중추원사에 이르렀으며, 그의 아들 3형제
중 맏아들 선(璿)은 태종의 부마로 한원군에 봉해졌다.
이조판서 극관(克寬)은 계생의 맏아들로 사관, 정자, 우정언, 지평, 이조정랑 등을 거쳤고, 세종때 병조와 형조의 참판을 지냈다.
말생(末生)의 7세손 정(挺)은 충수(忠秀)의 아들로 동지중추부사, 대사성, 이조 참판 등을 거쳐 광해군때 우의정에 올라 가문의 세력을 팽창시켰다.
한편 남(擥)의 아들인 존성(存性)은 검열을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한 후 인조반정 후에 형조 및 호조참판을 거쳐 동지돈령부사,
부총관을 역임했으며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검찰사로서 왕을 공주로 호종하였고, 정묘호란 때는 호조판서로 세자를 따라 전주에 갔다
돌아왔다.
존성(存性)의 아들 창원(昌遠)은 인조(仁祖)의 국구가 되어 한원부원군에 봉해졌고 영돈령부사가 되었으며, 동생 계원(啓遠)은 개성부 유수를
거쳐 형조판서에 올랐다.
특히 계원(啓遠)의 아들 7형제 중 둘째 귀석(龜錫), 셋째 희석(禧錫), 넷째 사석(師錫)과 다섯째 가석(嘉錫) 등이 뛰어나 가문의 번창을
누렸다.
한편 숙종때 노론(老論) 4대신의 한사람인 태채(泰采)는 군수 희석(禧錫)의 아들로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나, 후에 소론의 과격파
김일경의 사주를 받은 목호룡의 고변으로 진도에 유배된 후 사사되었다.
태구(泰耉)는 우의정 사석(師錫)의 아들로 문학, 승지 등을 거쳐 부제학, 호조판서를 지냈고,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가서 외교적인 공적을
쌓았으며 1720년 우의정에 올랐다.
그밖에 좌참찬과 호조판서 등 여러 벼슬을 두루 역임한 운규(雲逵)와 호조참판으로 동지 부사(冬至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영순(榮順)이
유명했다.
근대에 와서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영의정 두순(斗淳)과 좌의정 병세 (秉世)가 있다.
두순(斗順)은 한성부 판윤 등을 지내고 1849년 예문관 대제학으로 [헌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이어 [동문휘고(同文彙考)]의 찬집당상을
지냈다.
병세(秉世)는 을사조약으로 기울어 가는 국운앞에 충의를 다한 명신이다. 그는 고종때 함경도 암행어사로 나가 탐관오리들의 비리를 논척하여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돌아와 대사성(大司成)에 승진되었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乙巳五賊)의 처형을 주청하려 했으나 일본군의 방해로 고종을 만나지 못하자 민영환, 이명근
등과 함께 백관을 이끌고 을사조약의 무효를 연소(聯疎)했으며, 이어 대한문 앞에서 석고대죄하며 을사조약의 파기를 주장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유소(遺疎)와 동포(同胞)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이 수여되었다.
시조 조잠의 증손대 (조선 전기)에서
4개파로 나뉘었다. 그러나 정평공파와 제학공파는 1453년(단종 1년)의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김종서(金宗瑞) 일파로 몰려 멸문을 당함으로써 현재
그 후손이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물들은 문강공파의 후손이며 조말생은 사실상 중시조가 된다고 한다.
-정평공파(靖平公派) : 파조는 의정부 좌참찬을 지낸 조계생(趙啓生)이다.
-강화공파(江華公派) : 파조는 강화부사를 지낸 조유중(趙惟中)이다.
-문강공파(文剛公派) : 파조는 조말생(趙末生)이다.
-제학공파(提學公派) : 파조는 보문각제학을 지낸 조종생(趙從生)이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양주조씨(楊州趙氏)는 남한에 총 5,462가구, 23,22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묵안리
-전북 김제군 청하면 관상리
양주 양주조씨대종회 02-980-1332 서울
강북 -번-123-1(양주조씨회관)
임천 임천조씨종친회 02-722-1121 서울 중 -삼각-39(신우공사라이타창구)
한양 한양조씨 대종회 02-3675-7136 서울 특별시 종로구 충신동
120번지
평양 평양조씨대종회 02-2293-1295 서울 -성동-마장-474-8(3층)
풍양 풍양조씨대종회 02-576-3701 서울 -강남-포이-231-11...(풍양빌딩5층501호)
풍양 풍양조씨한산군파종증 02-885-4893 서울 -관악-봉천1-702-111(1동)
한양 한양조씨가산공파종회 02-382-1282 서울 -은평-응암3-119-4
한양 한양조씨대종회 02-2285-4090 서울 -종로-장사-220...(대영빌딩203호)
한양 한양조씨대종회 02-3672-4399 서울 -종로-충신-120-2
한양 한양조씨병참공파종회 02-544-1377 서울 -강남-신사-665-1
한양 한양조씨숭조회 02-514-0064 서울 -강남-신사-665-1
한양 한양조씨한풍군파종회 02-3477-9400 서울 -서초-방배-835...(송광빌딩4층)
함안 함안조씨화수회 02-2275-3109 서울 -중-산림-207...(대림아555호)
함안(趙) 함안청년회 054-292-2821 포항시남구오천읍세계리 jcr1004@sayclub.com
한양(趙) 한양조씨병참공파종회 02-544-1377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665-1
한양(趙) 한양조씨병참공파종회 02-544-1377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665-1
양주(趙) 양주조씨회관 0166313084 전북군산시중동 261번지19통3반 u2o4@yahoo.co.kr
한양(趙) 감역공파 종회 (031)575-2837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 432-6 bus777@chollian.net
양주 양주조씨장령공파종중 031-336-4509 용인 -삼가-428-5
함안(趙) 현감공파 011-9967-4722 hhcho@airport.or.kr
-신축보 : 1721년(경종 1년)
-계해보 : 1743년(영조 19년)
-을유보 : 1825년(순조 25년)
-병신보 : 1956년
-경신보 : 198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