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에서 금자광록대부 (金紫光祿大夫)로 추밀원 부사(樞密院府使)에 이르렀고 중국으로 건너가 남송(南宋)을 도와 금나라를 토평한 공으로
상장군(上將軍)이 되었다.
시조 조 춘 (趙 椿)의 현손 인규(仁規)는
고려조에 제교(諸校)가 되고 이어서 장군(將軍)에 오른 뒤 성절사로 원나라에
30여 차례나 사신(使臣)으로 왕래하였다. 그의 둘째 딸이 충선왕비가 되자
국구(國舅)로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 금자광록대부 (金紫光綠大夫)에
올라 수태위판중서문하이병부사(守太尉判中書門下吏兵部事) · 태자태사 (太子太師)
· 상장군 (上將軍)에 오르고 평양부원군(平壤部院君)에 봉해져서 충렬왕의
명으로 선대의 본관인 상원(詳原)을 평양(平壤)으로 이적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평양 (平壤)은 평안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4천여년의 역사를 가진 고도로서 왕검성, 기성, 낙랑, 서경, 호경, 유경
등으로 불리웠고, 단군, 기자, 위만의 3조선과 고구려의 도읍이기도 했던
곳이다. 고려 태조때 서경이라 부르다가 광종때 서도로 개칭되었으며 목종때
와서는 호경이라 하였으나 후에 평양부로 개칭하였다.
인규 (仁規)의 아들 5형제 중 맏아들
서(瑞)가 삼사사(三司使)에 이르렀고 평양군에 봉해졌으며, 둘째 아들 연(璉)과
셋째 아들 연수(延壽)가 찬성사(贊成事)를 지냈다. 넷째 아들의선(義旋)은
불문출가(佛門出家)하였고, 다섯째 아들 위(瑋)가 찬성사를 지냈다.
연(璉)의 손자 준(浚)은 강원도 안렴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고, 대호군, 전법판서 등을 거쳐 최영장군 휘하에서 왜구를 토벌하는 데 공을세워
선위좌명공신에 책록되었다.
그후 이성계를 도와 조선 창업에 공을 세우고 개국일등공신에 올라 평양부원군에 봉해졌으며, 태종때 영의정을 지냈다.
견은 어려서 중이 되었다가 환속하여 벼슬이 안렴사(案廉使)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경기도 과천 청계산에 은거했다.
이태조가 그에게 개국공신을 책록하고 친히 찾아갔으나 불사이군의 충절로 끝내 불취했다.
그외 태종의 동서로서 평원군에 봉해진 박(璞)은 정사공신과 좌명공신에 녹훈되고, 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명종때의 학자 형제인 성(晟)과 욱(昱)은 호(瑚)의 아들로 지평의 운계서원에 함께 제향되었다. 이밖에 태종의 사위였던 대임(大臨)과 병조정랑을
지낸 후 학문에만 전념한 수(須), 정조때 무신으로 서예에 뛰어났던 심태(心泰) 등이 명문 평양조씨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