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 (樂安)은 전라남도(全羅南道) 승주군(昇州郡)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는 백제시대의 분차군(分嵯郡: 分 郡이라고도 한다)인데, 통일신라의 경덕왕 때 분령군(分嶺郡)으로 개명하였으며, 고려시대에 낙안군으로 개칭하여 나주(羅州)에 속하게 하였다.
1172년(명종2)에 현(縣)으로 강등되었다가 후에 군(郡)으로 승격하였다. 조선시대에도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고 군으로 승격하기도 하였느데, 선조 때 군(郡)이 되었다가 1908년(융희 2)에 순천군(順天郡)과 보성군(寶城郡 두 군데 갈라서 편입되었다.
낙안오씨(樂安吳氏)의 시조(始祖) 오사룡(吳士龍)은 고려(高麗) 때 삼사 좌윤(三司左尹)을 지내고 외적(外敵)을 토벌한 공으로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고 낙안군(樂安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後孫)들은 낙안(樂安)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며, 8세손 척지(陟之)가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뒤 경연관(經筵官)을 역임하여 가세(家勢)를 일으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