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오씨족보 (蔚山吳氏族譜)」에 의하면 시조(始祖)는 오연지(吳延祉)로, 고려(高麗) 때 군기감(軍器監)을 지내고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역임하였으며 동남 변경(東南邊境)에 출몰한 왜구(倭寇)를 토평(討平)하여 학성군(鶴城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울산(蔚山)을 본관(本貫)으로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그의 손자 수천(受天)이 고려(高麗)에서 정의대부(正義大夫)로 좌부대언(左副大言)을 지냈으며, 증손 식(湜)이 조선(朝鮮) 태종(太宗) 때 형조 참의(刑曹參議)·전라도 도관찰사(全羅道都觀察使)를 거쳐 경주부윤(慶州府尹) 겸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에 이르렀다.
5세손 흠로(欽老)는 세종(世宗)때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제용 판관(濟用判官) 및 황주 판관(黃州判官)을 지냈다.
또한 이 괄(李适)의 난 때 왕(王)을 호종(扈從)한 공(功)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에 책록(策錄)된 도남(道男)과 장사랑(將仕郞) 적남(迪男), 그리고 현감(縣監)을 지냈으며 경사(經史)에 깊은 조예가 있어 덕망(德望)이 높았던 탁(琢)등이 유명하였다.
이 외에도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을 지낸 환,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이른 필제(必濟),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른 창웅(贊雄), 그리고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를 역임한 병규(炳奎)등이 가문을 빛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