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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위 (尹 威)
윤신달 (尹莘達 : 파평 윤씨의 시조)의 8세손으로, 1176년(고려 명종 6)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국자박사(國子博士)를 거쳐 기거랑(起居郞) · 이부낭중 (吏部郎中) · 예빈소경 (禮賓少卿) 등을 지냈다.
시조 (始祖) 윤 위(尹 威)는 1200년(신종 3) 국자사업(國子司業)으로 안렴사(按廉使)가 되어 호남(湖南)에 갔을 때 남원(南原)에서 복기남(卜奇男)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군수(郡守)가 제압치 못하고 안렴사인 위(威)에게 고(告)하자 단기(單騎)로 적도(賊徒)를 해산시키고 난을 평정(平定)하여 그 공(功)으로 남원백(南原伯)에 봉해졌고 남원 땅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아 후손들이 그 곳에서 살면서 파평 윤씨(坡平尹氏)에서 분적(分籍)하여 남원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그러나 백운거사(白雲居士)로 필명(筆名)이 높았던 이규보(李奎報)가 쓴 <국자사업윤공애사(國子司業尹公哀辭)>에 의하면, 윤 위(尹 威)는 문하시중(門下侍中) 윤 관(尹 瓘)의 후손으로 덕(德)과 인품(人品)과 문장(文章)을 갖추었으며, 술을 몇 말씩 먹는 호주가인데도 허튼 소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원은 전라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고룡군인데 후에 대방군으로 고쳤고 ,신라 경덕왕때 남원소경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태조조에 남원부로 삼았다가 다시 대방군으로 하였으며, 후에 남원군으로 고쳤다.
1739년 일신현으로 하였고 1895년 다시 남원군이 되었다.
가문을 대표하는 인맥으로는 , 아성의 전란에 순절한 극민(克敏 : 시조 위의 아들)과 문하시중에 올라 함안백에 봉해진 돈(敦)의 부자가 유명했으며, 시조의 현손으로 평리를 지낸 수균(守均)의 아들 황(璜)은 고려말에 전서를 지냈으나 조선 개국에 두문불사하여 충절을지켰다.

현령 신을(莘乙)의 현손인 효손(孝孫)은 어릴때부터 효행이 뛰어나 그의 할아버지가 효손(孝孫)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처관(處寬)이 의정부 녹사가 되어 이른 새벽에 정승집의 문 앞에 가서 명함(名啣)을 드리니 문지기가 정승이 주무신다는 핑계로 명함을 들여보내지 않았다.
날이 저물도록 기다렸다가 시장하고 피곤하여 할 수 없이 돌아와 아들 효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재주가 없는 탓으로 이런 욕을 당하니 너는 마땅히 학업에 근실하여 네 아버지처럼 되지 말라"하였다.
효손이 그 명함 끝에 글을 쓰기를 <정승은 해가 높도록 단잠 자는데, 대문 앞 명함 꼭지에는털이 났도다. 꿈속에서 주공(周公)을 만나 보거든, 그때에 토악(吐握)하던 수고를 물어 보소서> 하였다. 이튿날 그의 아버지는 그 명함 끝에 글을 쓴것도 모르고 다시 찾아가 명함을 드렸다

정승이 그 시를 보고는 즉시 불러 들여 묻기를 "이것이 네가 쓴 것이냐"하자 처관은 놀라고 두려워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글자의 획을 살펴보니 바로 그의 아들이 쓴 것임을 알고 마침내 사실대로 말하니 정승은 효손을 불렀다.
효손을 본 정승은 총명하기가 보통 아이와 다르므로 매우 칭찬하였다.
이때 정승은 사윗감을 고르고 있던 터라 들어가서 부인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 좋은 사윗감을 얻었소"하며 그 사실을 말하자, 부인은 "안됩니다.
우리 딸을 어찌 녹사의 아들과 혼인시키겠습니까"하였다.

정승은 부인의 반대를 듣지 않고 마침내 효손을 사위로 삼았다.
[명신록(名臣錄)]에 의하면, 박원형(영의정)이 효손의 명성을 듣고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는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정승은 바로 박원형이었음을 알 수 있다.

효손은 영의정의 사위로 문과중시를 거쳐 좌참찬에 이르렀고, 슬하에 7남 1녀를 두었다.
특히 그는 당세에 뛰어난 효자로도 이름이 높았는데, 아버지가 죽자 여막을 짓고 살면서시묘하였고, 묘가 10여 리나 떨어져 있어도 매일 아침마다 묘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는 반드시걸어서 돌아와 어머니를 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때 상주성을 지키다가 장렬하게 순절한 섬(暹)은 광국이등공신으로 용성부원군에 추봉되었고, 그의 손자 계(棨), 집(集), 유(柔) 3형제가 크게 현달했다.

계(棨)는 인조때 남양 부사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만언소를 올리고 근왕병을 모집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려다가 포로가 되었는데, 꿇어 않히려는 적앞에 목이 끊겨도 되놈 앞에서 무릎을 못 꿇겠다고 버티다가 발이 잘리었다.
그는 발이 없는것과 꿇는 것과는 다르다고 굴복하지 않다가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

집(集)은 병자호란때 화의를 극력 반대했다가 척화론자로 몰려 청나라에 잡혀가서갖은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다가 오달제, 홍익한과 함께 심양의 서문 밖에서 죽음을 당하여 척화 <삼학사(三學士)>로 불리웠으며, 그의 아우 유(柔)도 두형의 죽음에 뜻을세워 청나라 입김이 스며든 조정을 멀리하고, 효도와 문행으로 여생을 마쳐 가장 강력한 척화가문으로절의를 세웠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원윤씨(南原尹氏)는 남한에 총 8,767가구, 37,83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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