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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윤씨 (咸安尹氏)는 태사공(太師公) 윤신달(尹莘達)의 8세손으로 남원백(南原伯)에 봉해진 윤 위(尹威)의 손자(孫子)인 윤희보(尹希輔)를 시조로 받든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고려 때 흥위위주부(興威衛主簿)를 지내고 함안(咸安)에 정착 세거하면서 관향(貫鄕)을 함안으로 하게 되었다. 그후 희보의 아들 기( )가 의랑(議郞)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로 제학(提學)을 지낸 희(禧)와 상시(常侍)를 역임한 당(糖) 형제가 가문을 증흥시켰다.
희(禧)의 증손(曾孫)인 기견(起 )은 조선 세종(世宗) 때 문과(文科)에 올라 문종(文宗) 때 집현전 부교리(集賢殿副校理)로서 기주관(記注官)이 되어 「세종 실록(世宗實錄)」 편찬에 참여했으며 연산군 때 부원군(府院君)에 추봉(追封)되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 각(殼)은 진사(進士) 익상(翊商)의 아들로 숙종(肅宗)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함경도 병마절도사(咸鏡道兵馬節度使)로서 청(淸)나라 사신(使臣)과 함께 백두산(白頭山)의 경계를 사정(査定)하고, 삼군 수군통제사(三軍水軍統制使)를 거쳐 총융사(摠戎使)를 지냈다.
그외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어영대장(御影大將)을 지낸 의검(義儉)과 태연(泰淵)등이 명망높은 가문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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