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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윤씨(永川尹氏)의 시조(始祖) 윤절생(尹切生)은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냈으며, 그의 증손(曾孫) 승관(承琯)이 고려 원종(元宗) 때 문과에 장원(壯元)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라 고울(高蔚: 영천의 옛 지명) 백(伯)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영천(永川)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그 후 절생의 아들 득지(得之)가 고려 강종(康宗)때 문과에 급제한 후 태자 첨사(太子詹事)를 역임하였고, 6세손 위보(渭保)는 삼중대광 문하 찬성사(三重大匡門下贊成事)와 집현전 태학사(集賢殿太學士)를 역임하였으며 익성군(益城君)에 봉해졌다. 또한 절생의 7세손 취(就)는 광정대부(匡靖大夫)에 올라 검교군 기감사(檢校軍器監事)을 지냈다.
이 외에도 이조 참의(吏曹參議)와 경연 참찬관(經筵參贊官)을 지낸 긍(兢),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빙(聘), 승무원 박사(乘務員博士)를 역임한 척각(天覺), 병조·예조 좌랑(禮曹佐郞) 등을 역임한 효각(效覺) 등이 가문(家門)을 빛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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