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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뿌리 > 성씨의 유래 

휘 (諱): 윤군정(尹君正), 사공(司空)
      단  소: 충북 괴산군 사리면 소매리 

해평 (海平)은 경상북도(慶尙北道) 선산군(善山郡)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파징(波澄)이라고도 불리웠으며, 신라(新羅) 때의 병정현(竝井縣)으 고려초에 해평군(海平郡)으로 고쳐서, 복주(福州: 안동 의 옛 이름)에 속하게 하였고, 후에 상주(尙州)와 선산(善山)으로 이속되었다가 1415년(태종 15)에 해평현(海平縣)으로 강등된 후 선산군(善山郡) 해평면(海平面)이 되었다.

  해평 윤씨 (海平尹氏)의 시조(始祖)는 고려 고종(高宗)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수사 공(守司空)·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판공부사(判工部事) 등을 역임한 윤군정(尹君正)이다. 군정(君正)의 아들 만비(萬庇)가 충렬왕(忠烈王) 때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와 상호군(上護軍)을 지냈고 후에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손자(孫子) 석(碩)은 충숙왕(忠肅王) 때 충근절의동덕찬화보정 공신(忠勤節義同德贊化保定功臣)으로 우정승(右政丞)·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고려 도원수(高麗都元帥)의 직위(職位)를 받았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해평(海平)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 (人物)로는 충혜왕(忠惠王)때 좌정승(左政丞)을 지낸 석(碩)의 아들 지표(之彪)가 문하평리(門下評理)가 되어 원(元)나라에 다녀와 해평군(海平君)에 봉군되어 가문을 빛냈다. 대호군(大護軍) 보(寶)의 아들 가관(可觀)은 우왕(禑王) 때 경상도 부원수(慶尙道副元帥)로 함양(咸陽)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여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에 올라,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를 지낸 뒤 창(彰)과 함께 현달하여 이름을 떨쳤다.

조선조에 와서는 첨정(僉正)을 지낸 훤(萱)의 아들 은보(殷輔)가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성종(成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교검(校檢)으로 춘추관(春秋館)의 기사관(記事官)을 겸직, 「성종실록(成宗實錄)」편찬에 참여하고 중종(中宗) 때 좌찬성(左贊成)·우의정(右議政) 등을 거쳐 1537년(성종 32) 영의정(領議政)에 올랐으며, 대사성(大司成) 은필(殷弼)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명종(明宗) 때 문과(文科)에 오른 두수(斗壽)는 1590년(선조 23)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功)으로 광국이등공신(光國二等功臣)에 책록되어 대사헌(大司憲)·호조판서(戶曹判書) 등을 지내고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특히 두수(斗壽)는 문장(文章)과 글씨에 뛰어나 문징명체(文徵明體)에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며, 슬하의 다섯 아들이 모두 급제하고 벼슬에 올라 좌찬성(左贊成)을 지낸 아우 근수(根壽)와 함께 명성을 날려 명문(名門)의 대(代)를 이었다.

그 중에서도 맏아들 방(昉)이 인조(仁祖) 때 영의정(領議政)에 올라 부자영상(父子領相)으로 이름을 덜쳤으며, 둘째 흔(昕)은 예조 참판(禮曹參判)을 거쳐 지중추부(知中樞府事)에 올랐고, 셋째 휘(暉)가 우찬성(右贊成)과 공조 판서(工曹判書)를 지냈고, 넷째 훤(暄)은 병조 판서(兵曹判書), 막내인 우(旴)가 병마 절도사(兵馬節度使)에 이르러 훌륭한 가문임을

널리 알렸다 . 방(昉)의 아들 이지(履之)는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를 역임하였고, 신지(新之)는 선조(宣祖)의 부마로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소모대장(召募大將)으로 공을 세웠으며, 또한 순지(順之)는 훤(暄)의 아들로 예조 판서(禮曹判書)·대제학(大提學)을 지냈으며, 그의 증손(曾孫)으로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역임 한 유(游)와 이조 참판(吏曹參判) 및 대제학(大提學)을 겸임하고 이어 에조 판서(禮曹判書)에 오른 순(淳)이 당대의 명필(名筆)로 이름을 떨쳤다.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역임한 급(汲)은 글씨가 뛰어나 윤상서체(尹尙書體)란 독특한 서체(書體)를 이루었으며, 정조(正祖) 때 여러 판서(判書)를 거쳐 우의정(右議政)에 이른 기동(耆東)은 가문(家門)을 한층 빛낸 인물이다.

명문(名文)과 명필(名筆)로 명성을 얻은 근수(根壽)는 성리학에 능하였고「사서토석(四書吐釋)」·「월정집(月汀集)」등의 저서(著書)를 남겼으며 동부승지(同副承旨)·대사성(大司成) 등을 지내고 주청부사(奏請副使)로 명(明)나라에 가서 종계변무(宗系辨誣)를 하고 돌아와 대사헌(大司憲)·형조 판서(刑曹判書)·양관 대제학(兩館大提學) 등에 올랐다.

이 황 (李 滉)·조 식(曹 植) 등과 학문을 토론하였고, 성 혼(成 渾)·이 이(李 珥)와도 친분을 두터이하며 학문의 깊이를 더하였다.

그 밖의 은보(殷輔)는 성종(成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한 뒤 「성종실록(成宗實錄)」·「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대전후속록(大典後續錄)」등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승길(承吉)은 찬성(贊成)에 올라 해선군(海善君)에 봉해졌으며, 승훈(承勳)은 승길(承吉)의 아우로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거쳐 영의정(領議政)을 역임하여 덕망높은 가문을 유명하게 하였다. 근대 인물(人物)로는 택영(澤榮)의 딸인 윤비(尹妃)가 방(昉)의 후손이고, 구한말(舊韓末) 개화당(開化黨) 내각(內閣)에서 군부 대신(軍部大臣)을 지낸 웅렬(雄烈)과 그의 아들 치호(致昊) 등이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해평 윤씨(海平尹氏)는 남한에 총 5,489가구, 22,75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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