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비밀번호
회원가입  |  아이디, 비밀번호 찾기
2026년
음 : 09-17
양 : 10-27
서기:2026년
단기:4359년
불기:2570년
위아래 - 세상 끝난 뒤에도 -
 
 home > 뿌리 > 성씨의 유래 

휘 (諱): 윤 숭(尹 崇), 창화백(昌化伯)

양주 (楊州)는 경기도(京畿道) 중앙 남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 때 매성군(買城郡) 혹은 창화군(昌化郡)이라 하였는데, 통일신라(統一新羅) 경덕왕(景德王)이 내소(來蘇)로 고치고 고려 초에 견주(見州)로 승격하였다가 1668년(현종 9) 양주(楊洲)에 속하였다. 조선조에는 다시 양주(楊州)로 개칭한 뒤 여러번 변천을 거쳐 1895년(고종 32) 군(郡)이 되었다.

  양주 윤씨 (楊洲尹氏)의 시조(始祖)는 고려에서 도첨의 정승(都僉議政承)을 역임한 윤 숭(尹 崇)이다. 그의 선계(先系)는 문헌(文獻)이 실전(失傳)되어 확인할 수는 없으나 양주(楊州)에 정착(定着)한 사족(士族)으로 전한다. 그리하여 후손(後孫)들은 본관(本貫)을 양주(楊州)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왔으며, 숭의 아들 덕방(德方)이 판전의사사(判典儀寺事)를 역임했으며, 손자(孫子) 수(壽)가 조선에서 만호(萬戶)를 역임하였고, 증손 기(期)는 주부(主簿)를 지내 가문(家門)의 전통을 세웠다.
 그외 6세손 장(璋)이 성종(成宗) 때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공조 판서(工曹判書)에 이르렀으며, 10세손 안국(安國)은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典籍)·부승지(副承旨)·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를 역임했고, 홍국(弘國)은 병조 좌랑(兵曹佐郞)으로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양주 윤씨(楊州尹氏)는 남한(南韓)에 총 491가구, 2,31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원회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제휴문의 | 광고문의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민주로 32번길 29 (쌍촌동)     상호명 : 광산탁씨전자족보운영회
단체고유번호: 410-80-40462  대표: 탁인석    전화번호 062-374-0045
© HUMEN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