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말 중랑장을 역임한 양저를 시조로
하고 , 그의 후손 만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선산 임씨 (善山林氏)는 신라 말기의
인물인 태사공(太師公) 임양저(林良貯)를 시조로 하고, 그의 후손 만(蔓)을
1세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선산 (善山)은 경상북도 중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 눌지왕때 일선군으로 불렸으며, 경덕왕때 숭선군으로 개칭, 995년에
선주로 고쳤고, 그후 선산으로 바뀌었다.
조선조에서 명성을 떨친 억령 (億齡)과
백령(百齡) 형제는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이다.
우형(遇亨)의 아들인 억령은 을사사화때 금산 군수로서 아우 백령이 소윤(少尹) 일파에 가담하여 대윤(大尹)의 많은 선비들을 추방하자 자책을
느끼고 벼슬에서 사퇴 하였다가, 1552년 동부승지, 병조참지 등을 역임, 이듬해 강원도 관찰사를 거쳐 1557년 담양 부사가 되었다. 아우
백령은 을사사화의 주동 인물로 위사일등공신이 책록되고 숭선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우찬성에 승진하여 선산임씨(善山林氏)를 명문의 가문으로 이끄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선산 임씨(善山林氏)는 남한에 총 1,714가구, 7,09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