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시조 림우 (林祐)는 고종원년(갑술년)에
등과하시어 용호좌윤이 되었고, 아골타 난리 때 출정하여 (*아골타;여진족,
금나라 황제라 자칭, 고려 수차례 침공)큰 공을 세움으로 은청광록대부(고려
때 정3품)에 올라 중부상서를 지냈다.
그리고 몽고의 침입때는 임금을 호송한 공으로 난이 평정된 후 울릉군에 책봉되시었다.
시호는 충경공이시다.
1. 林氏 淵源연원;
중국 서하에 은나라 최후의 왕인 주왕의 폭정을 보다못해 직간하다가 참형 당한 비간의 아들 견(林堅)이 장림산에 은거하면서 성을 林으로 하였다.
2. 우리나라 전래;
당나라 문종 때 한림학사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임팔급이 팽성(현;평택)에
정착세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林씨;
평택 林씨에보 분적한 것이다.
4. 울진 林씨;
고려때 '은청광록대부'에 올라 중부상서를 지내고 호종공신으로 울릉군에
봉해진 林祐(림우)로 부터 시작.
5. 영덕파:
우리 가족이 속한 영덕파는 祐의 16세손인 林文(림문)이 영덕에 입향하면
서 부터이다.
정리하면,
林씨 시조는 림견(林堅)
도시조 림팔급(林八及)
중시조 림우(林祐)
파시조 림문(林文)
본관은 울진(蔚珍) 林氏이다.
고대에는 파조로 불리다가 , 삼한 때 변한에 속하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고우이군(古于伊郡), 신라 우진(于珍) 소속이었고, 통일신라
때 울진이라 칭하고 군으로 삼았다. 고려시대에는 울진군에 속한 평해를
평해군으로 분리 승격시켰는데, 평해군은 고구려의 근을어(近乙於)로서
그렇게 고쳐 부른 것이다.
1914년 2개 군을 합해 울진군으로 고친 뒤, 1963년 1월 1일부터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관할이 넘어갔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복벽운동으로 인해 울진군이 현으로 되었다가 갑오개혁 때 다시 울진군이 되었다. 읍성을 두고 울진포령이 통치하였으며 수군만호를
두었다.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 (朝鮮)에서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을 지낸 욱경(旭卿), 기골이 장대하고 무용(武勇)에 뛰어난
역사(力士)로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여 많은 전공을 올린
중량(仲樑), 그리고 전적(典籍) · 예조 좌랑 (禮祖佐郞) 등을 지냈으며
「대학(大學)」,「근사록(近思錄)」 등에 정통한 익빈(益彬) 등이 유명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울진 임씨(蔚珍林氏)는 남한(南韓)에 총 2,639 가구,
10,53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